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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세윤 Jul 08. 2021

우리 집 반려견이 성장했다

학대받은 과거를 치유하는 법

우리 집 강아지, 민트가 성장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건 얼마 전 본가에서 하룻밤 잘 때였다. 밤만 되면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민트 때문에 엄마는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민트가 침대에서 내려가 혼자 자기 시작했다.  


전에 몇 번 강아지 방석을 사주고 “앞으로 잠은 여기서 자는 거야” 하고 훈련도 해봤다. 그러나 이내 방석은 무용지물이 됐다. 밤만 되면 처연한 얼굴과 애처로운 목소리로 낑낑댔기 때문이다. 그 우는 듯한 목소리가 가엾어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엄마와 민트는 7년 가까이 불편한 동침을 이어 나갔다.


“엄마, 쟤 지금 장판 바닥에서 자는 거야?”

“응, 저기가 시원한가 봐. 요샌 더우면 가끔 저렇게 내려가서 자.”


나는 민트의 새로운 모습에 무척 놀랐지만, 엄마는 그간 종종 봐왔던 듯 무심하게 답했다.


사실, 민트는 우리 가족이 두 번째로 입양한 반려견이다. 본가엔 민트와 초코, 두 강아지가 살고 있고 그 둘은 남매견이다. 8년 전, 지인의 강아지가 한 번에 일곱 마리를 출산해 입양처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유받은 동영상에선 손바닥만 한 새끼 강아지가 담요에 몸을 비비며 꼬물거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잔상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고 우리는 필연처럼 첫 번째 반려견, 초코를 입양했다.


갓 태어나 눈도 잘 못 뜨던 초코
지금은 이렇게 컸습니다


초보 반려인이 으레 그렇듯 우리 가족은 초코와 함께 생활하는 법을 터득하려고 한동안 고군분투했다. 매일 산책시키기, 헤집어 놓은 쓰레기통 정리하기, 비싼 병원비 감당하기 등. 벅찰 때도 있었지만, 초코와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반려인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알아갔다. 그러던 중, 민트의 파양 소식을 들었다.


민트는 어느 할머니 집에 입양됐었는데, 할머니의 치매와 건강악화로 더는 그 집에 살 수 없게 됐다. 오갈 데 없어진 처지가 안쓰러워 우리가 민트를 입양하기로 했다. 민트를 처음 봤을 땐 조금 놀랐다. 푸들 특유의 윤기 나고 곱슬 거리는 털은 온데간데없었고 흰 살갗이 보이는 몸에 겨우 1cm 정도의 푸석한 털만 붙어 있었다. 또, 초코와 남매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몸집이 아주 작고 말라서 갈비뼈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특히, 치아 상태가 심각했는데, 그동안 사람 먹는 걸 먹고 큰 건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유치도 제때 빠지지 않아 사람의 덧니처럼 영구치와 겹쳐 난 곳이 태반이었다.


남루한 외형보다 심각한 건 민트의 내면이었다.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만 나도 크게 놀라 식탁 밑에 웅크리고 숨었고, 몸에 손을 대려 하면 지레 겁먹어 잔뜩 움츠렸다. 우리가 외출하고 돌아와 잘 있었냐며 안아주려 하자, 그 자리에서 소변을 지리기도 했다. 우린 그간 민트가 학대받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트를 대할 때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우선, 민트가 먼저 다가와서 우리와 몸이 붙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만 부드럽게 만져줬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잠시 아는 척하지 않고 민트가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렸다. 칭찬할 만한 일이 있으면 높은 톤의 목소리로 아낌없이 좋은 말을 해주고 얼굴을 쓰다듬어줬다. 사료와 간식도 부족함 없이 주려고 애썼다. 민트를 키우던 할머니가 그간 먹을 걸 극소량으로 줬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몸집이 크면 귀엽지 않다고...


1년, 2년이 그렇게 지나고 민트와 함께한 지 어느덧 7년이 됐다. 더는 현관문 앞에서 소변을 지리지도, 갈비뼈가 보이도록 몸이 마르지도, 덜덜 떨며 식탁 밑에 숨지도 않는다. 산책을 나가면 앞서 가려고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이름을 부르면 있는 힘껏 달려와 포옥-하고 품에 안기기도 한다. 그런 민트가 이젠 잠도 혼자 잘 수 있게 됐다. 자식을 독립시킨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한 오묘한 기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가족의 애정을 듬뿍 받아 성장한 민트가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우리 민트, 인형같고 넘 귀엽쥬?


민트 초코!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하자, 함께한 7년이 10년 되고, 20년 될 때까지. 아니, 가능하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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