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모솔새 Jun 08. 2021

저는 과일을 안 먹습니다

30년 차 편식 생활자의 고백

누구에게나 가리는 음식은 있다. 아니, 나는 그렇게 믿는다. 품목과 정도가 다를 뿐 다들 음식을 가린다고... 다만 나에게는 그게 과일이었을 뿐이다. 나는 사과를 제외한 과일 일체를 먹지 않는다.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다. 내가 과일을 가리는 건 그냥 질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제각기 정도는 다르지만 주로 물컹한 그 느낌이 나는 못 견디게 싫다. 거기에 과일 특유의 단내가 더해지면 더 견디기 힘들다. 사과만이 예외인 것도 특유의 아삭거리는 식감 덕택이다. 비슷하게 배와 감도 아삭, 사각거리는 식감이긴 해도 맛이 사과만큼 맘에 들질 않아 누가 강요하는 경우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사과의 경우에도 찾아 먹는 건 아니어서 깎아 놓은 사과가 있을 때에나 집어먹는 편이다.


과일이 저렴한 나라도 아닐진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일 먹기를 참 좋아한다. 그건 내가 '전 과일을 안 먹어서요...'라고 소심하게 과일을 거절하고, '왜 과일을 안 먹어? 거 참 이상하네.' 하는 반응을 돌려받은 횟수만큼이나 많으니까 보증할 수 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위에 설명한 대로 답하는데, 그 정도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과일을 왜 고작 그런 이유로 안 먹는 거야? 하는 질문과 눈빛을 수십 수백 번 마주하다 보면 지치게 된다. 그렇다고 납득이 될 만큼 열심히, 과일이 내게 주는 감각이 얼마나 징그러운지 설명할 수도 없다. 그 방법도 써봤는데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내가 먹지 않는다고 남들 입맛까지 떨어뜨릴 필욘 없지, 비록 그 사람들이 나의 입맛은 존중하지 않을지언정...


참 이상하네, 하며 중얼거리던 상대방은 과일을 입에 넣으며 또 한마디 한다. 생각을 바꿔봐! 이상하다고,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못 먹는 거야.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데. 이 말도 골백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주로 부모님과 친척들로부터 유년 시절에 끊임없이 들었다. 물론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강요에 의해 이런저런 과일들이 무슨 맛인지 알 만큼은 먹어보았지만 과일 먹기는 결코 즐거워지지 않았다.


스무 살 무렵에는 친구들과 함께 간 칵테일 바에서 과일 샐러드가 나왔다. 함께 먹는 메뉴에 과일이 나오면 나는 아예 그 메뉴 전체를 포기하는 편이다. 그건 페타 치즈와 파인애플을 같은 크기로 썰어 넣고 이런저런 재료를 넣은 샐러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친구는 나를 불쌍히 여겨 치즈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어주었다. 마침 칵테일 바의 조명은 어두웠고 치즈와 파인애플은 원래가 색이 엇비슷했다. 그다음 일어난 일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으리라. 친구가 입에 넣어준 건 치즈가 아니라 파인애플이었고 나는 그게 이에 닿는 순간 게워내고 말았다. 감각은 생각보다 빠르다. 생각을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웃긴 건, 조부모님께서는 과일 농사를 지으셨다는 거다. 할아버지는 포도 농사를, 외할아버지는 자두 농사를 지으셨고 성주에 사시는 이모는 작년까지만 해도 참외 농사를 지었다. 직접 농사지은 과일을 먹지 않겠다고 손녀가 도리질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속상하셨겠냐마는 그 당시 나는 필사적이었다. 자두도 그렇지만 포도의 물컹함은 참을 수 없었다.


술자리에서 술을 다시는 안 먹는 방법 중에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한 번 쓰러지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그럴 수도 없었다. 집이라면 토해 버리면 될 일이었지만, 직접 농사지은 과일을 손녀가 먹고 토하는 모습이라니 그건 안 먹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물론 그분들은 내가 과일을 냠냠 씹어 삼키길 바라셨겠지만 나에겐 안 먹느냐 먹고 게워내느냐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물론 가끔은 강요에 못 이겨 삼켰다가 이내 뱉을 때도 있었다. 밥 먹고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이 제발 사과이기를 바랐던 나날들이었다. 나는 과일을 먹지 않는다고 수십 번 외쳐도 그분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도 과일을 먹어 보라 권하시지만, 이제는 예의상 건네는 말임을 안다. 성인이 되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주변인이 나의 편식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속편은 아래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