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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n 13. 2021

내게 과일을 먹이려는 부모님의 여정

저는 과일을 안 먹습니다 (2)

어렸을 때부터 과일을 먹지 않았을 거라는 내 짐작과는 달리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과일을 곧잘 먹는 아이였다고 한다. 없던 취향이 취학아동이 되자마자 갑자기 생겨버린 걸까?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정말 안 나는 사람이라 과일이 싫어지던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 감각이 어땠는지 떠올릴 수가 없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과일 한 두 가지도 아니고 사과를 뺀 모든 과일을 거부하기 시작하니 많이 놀라셨으리라.


부모님은 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큰 장애라도 될까 싶어 과일 먹이기에 열성이셨다. 나는 고집이 센 어린아이였으므로 당시엔 매일같이 집안에서 소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곤 했다.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자 모두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나는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니까 우리의 경기 스코어는 반반에 가까웠다. 어떤 날은 무사히 과일 없이 넘어갔고 어떤 날은 과일이 무슨 맛인지 알 만큼은 씹은 다음 뱉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편식을 고치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시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애도를.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과일을 안 먹는 사람으로 남을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아셨더라면, 우리 딸의 취향에는 과일이 안 맞는구나, 하며 과일 먹이기를 포기하셨을까? 아니면 그렇더라도 조금은 먹여보고 싶은 게 부모님의 마음일까. 어찌 되었든 어린 시절 억지로라도 조금이나마 과일을 맛본 덕에 사람들이 과일 맛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배는 사과에서 새콤한 맛을 빼고 서걱한 식감을 더하면 되고, 감은 달고 아삭하지만 미끈함이 남는 맛. 수박은 달고 풋내가 나면서 물이 많았고, 참외에서도 수박이나 오이 비슷한 풋내가 났지만 단맛이 조금 더 강했다. 귤과 오렌지는 과즙이 새콤달콤 맛있지만 질겅한 그 부분이 목 뒤로 좀체 넘어가지 않아서 고생했다. 이런 것들은 어찌 되었든 인상을 찌푸리면서라도 먹을 만했다. 하지만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건 딸기였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과일 먹기에 상금을 내걸었다. 아마 한 번만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선명히 기억하는 장면은 딱 하나뿐이다. 품목은 딸기. 딸기 한 개를 다 먹으면 만원을 주신다는 거였다. 당시 과자 한 봉지는 500원이었고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혹했을 법한 거래였다. 물론 걔들에게는 딸기도 먹고 돈도 벌 수 있는 그런 제안은 아무도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딸기만 아니었어도 해볼 만했을 텐데 하며 주저하다가, 그래도 만원이면 정말 큰돈이라는 생각에 접시에서 제일 작은 딸기를 골라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물컹한 그 질감과 너무 달큼해서 속을 울렁거리게 했던 향기는 씹을수록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그걸 씹어 삼키려고 했지만 겨우 일부를 목 너머로 넘기는 데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남은 분량을 모두 삼키려다가, 우웩. 그 이후로 부모님은 딸기만큼은 내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나는 (가끔 억지로 한 조각씩 삼킨 것만 빼면) 과일을 먹지 않고도 별 탈없이 자라났고 부모님은 점차 내가 과일을 골고루 잘 먹게 되리라는 기대를 내려놓으셨다. 그러다 내가 고등학생쯤 되자 레퍼토리가 조금 바뀌었다. 깎아놓은 과일 앞에서 내가 "안 먹어요~." 하면, 나중에 결혼한다고 시댁 갔는데 시부모님이 과일 먹으라고 주셔도 안 먹을 거니? 물으시는 거였다. 나는 그 질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했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예비 며느리에게 좋은 마음으로 과일을 대접했는데, 내가 그걸 거절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내가 걱정하면 된다. 나는 '그럼 그때 가서 먹든가 할게요' 하는 말로 엄마의 복장을 뒤집어놓았다. 엄마의 진짜 속뜻은 그런 상황이 되면 어차피 먹을 거니까 지금부터 먹어 두라는 뜻이었다.


이윽고 세월이 흘러 엄마가 예견했던 시기가 다가왔다. 다행히도, 어머님이 손수 깎아주신 과일을 내가 면전에서 거절하고 분위기가 가라앉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상견례와 결혼 전 모임은 모두 식당에서 이루어졌고 후식으로 과일이 나왔을 때, 그저 '전 과일을 못 먹어서요'란 한 마디로 충분했던 기억이 난다. 이유도 묻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니 그런 배려 덕분에 삐걱거림 없이 무사히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도 댁에 놀러 가면 항상 후식으로 과일이 나오지만 어머님은 내가 먹을 다른 간식을 챙겨주시는 편이다. 과일이 무척 달 때에는 맛있다며 권하시기는 하지만 거절해도 아쉬워하실 뿐, 기분 나빠하시지는 않는다.


시댁에서 권하면 과일을 먹겠지, 하는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지만 과일을 양껏 먹이겠다는 엄마의 소원은 대상을 약간 바꾸어 이루어졌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前)과일가게 아들인 내 남편이다. 나는 태어나서 과일을 이렇게 잘 먹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수박을 제일 좋아하는 과일로 꼽는 그는 수박씨까지 남김없이 모조리 먹어치우는데, 먹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접시 위에 담을 필요조차 없다. 엄마는 이제는 내가 아니라 사위를 위해 수박을 사 오신다. 맛있는 과일이 있으면 수소문해서라도 주문하시고는 사위 주려고 샀다며 뿌듯해하신다.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는 블루베리와 산딸기, 참외가 있고 아랫칸엔 애플수박과 멜론도 있다. 오래되긴 했지만 내 몫으로 받아온 사과도 있다. 그동안 내게 못 먹인 과일을 이제는 사위에게라도 대신 먹이시려는 것 같다. 엄마는 과일을 먹일 사람이 있어서, 나는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과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마도 나도 절반쯤 해피엔딩을 맞은 셈이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내가 방심하는 틈을 타 나에게 과일을 먹이려고 한다. 적은 가까이에 있었다.


아니면 혹시, 우리 부모님의 지령을 따로 받은 건 아니겠지.




안 읽어도 되지만 읽으면 더 좋은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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