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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Aug 31. 2021

우리 주변의 편식자들

다들 잘 지내나요 이 편식의 시대에

수많은 음식들을 가리는 식성 덕에 나는 편식에 관대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웬걸, 편식쟁이 옆에는 편식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인력의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살면서 유독 편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수많은 편식쟁이 중 한 사람일 뿐 내가 유별난 건 아니었다고.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사람은 흔하다. 학창 시절 가까이 지내던 친구 하나는 옆에서 참치캔을 여는 것도 질색했다. 나는 참치캔의 기름마저 맛있다며 원샷하는 사람이지만, 생선 냄새가 역겹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그건 쉽게 이해가 갔다. 비린내만큼은 아니지만 고기의 누린내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솔직히 말해 누린내라는 감각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느 날 급식실에서 돼지고기 반찬을 먹다가 문득,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누린내라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그제야 고기 냄새를 맡고 속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걸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다. 지금도 나는 고기의 잡내에 둔감한 편이고 남들은 냄새가 나서 못 먹는다는 양고기도 곧잘 먹는다. 


대학에 오니 버섯을 먹지 않는다는 친구가 있었다. 버섯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거였다. 알 것도 같았다. 씻지 않은, 봉지에서 갓 꺼낸 팽이버섯에서 나는 그런 냄새. 게다가 버섯은 엄밀히 따지면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균류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은 더더욱 먹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이런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편식이라니... 물론 나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과 별개로 여전히 버섯을 좋아한다. 균인들 어떠하리 비린내가 난들 어떠하리. 내 입엔 맛이 있는걸... 


풀을 먹지 않는 친구도 생겼다. 내가 과일을 안 먹는 것처럼, 이 친구는 풀을 다 가렸다. 작은 배추김치 조각 정도는 먹었던 것도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푸른색이 도는 건 다 가렸다. 풀은 너무 쓰고 맛이 없다고 했다. 어느 풀을 씹든 치커리 맛이 나는 게 아니겠는가 짐작만 할 뿐이다. 푸성귀를 안 먹는다고 해서 채식주의자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생각보다 먹을 수 있는 건 많았다. 나와 이 친구가 함께 식사를 하면 곧잘 편식하는 사람들의 점심시간이 재현되기 마련이었으나, 상호 입맛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합의점은 쉽게 도출되었다. 싫어하는 음식은 달라도 좋아하는 음식이 비슷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과일을 안 먹는 사람으로 지내면서, '세상에 이런 편식쟁이가 있나' 하는 눈빛을 여러 번 받아봤지만 이런 나도 안쓰럽게 바라보게 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김치를 싫어했다. 정확히는 마늘이 들어간 배추김치를 싫어하는 거였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한국에서 김치를 못 먹다니! 이후에 듣자 하니 김치를 안 먹거나 못 먹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었다. 아아... 그들의 괴로움을 생각하면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이 왜 김치를 안 먹어?" 아악!


세상은 넓고 살다 보니 과일을 가리는 사람도 만나게 되었다. 그게 내 사촌동서고, 예외적으로 사과는 먹는다는 것도 참 기막힌 우연이다. 심지어 남편의 사촌은 딸기 농사를 짓는다. 어디서 많이 본 얘기 같지 않은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덧을 하면서 과일을 조금 먹게 되었다고 하니, 나도 앞으로 스스로 찾아 먹을 날이 올지 어떨는지. 


결혼을 하게 되자 결혼 전엔 몰랐던 남편의 식성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약간 속은 느낌조차 든다. 뭐든지 안 가리고 잘 먹는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아니었을 줄이야. 하긴 나 스스로가 대단한 편식쟁이면서 배우자는 음식을 골고루 먹기 바라는 것도 치사한 일이다. 그는 맛이 심심한 걸 싫어한다. 예를 들면 흰 떡, 두부, 비지, 죽, 감자 같은 것들.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지... 이외에는 팥도 싫어한다. 그렇다면 그가 일 년 중 가장 싫어하는 날은? 바로 동짓날. 어딜 가나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주기 때문이다. 떡국도 좋아할 리 없지만 나는 떡국을 매일 먹어도 즐거운 사람이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도 우리 집 식탁은 평화로우니 다행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나 편식을 하는 걸까? 어떤 음식도 안 가리는 친구는 딱 한 명 있었다. 친하지 않은 친구들 중에는 더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친구도 지금쯤이면 새로운 외국 음식을 가리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를테면 고수라든가. 그러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입맛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음식을 가리는 건 본 적이 없다. 아하, 생각보다 가까이에 편식 안 하는 사람이 있었네. 어쩌다 이런 엄마에게서 내가 나왔을까 싶다. 그건 아마도 아빠 덕분일지도 모른다. 아빠도 음식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니지만, 좋아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에 대한 선호만큼은 명확하니까.


주는 대로 먹어야 했던 시대를 넘어 먹고 싶은 대로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중에는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음식을 가리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음식을 가려 먹는 데에 관대해진 사회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야흐로 편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음식을 가리시는 여러분, 편식의 시대가 왔습니다. 요즘은 지내기가 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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