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노트냐 눈치 노트냐?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여야 갈등이 고조되면서 정의당은 또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되었다. 초기에 조국 관련 의혹들이 터져 나오면서, 심상정이 '데스 노트'를 만지작 거린다는 얘기가 나오자 조국 지지자들의 겁박이 관련 기사 댓글에 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의혹이 별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결과적으로 그 '노트'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눈치 노트', '간 보기'냐 '정의당에 정의가 없다'라며 지지자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떨어뜨리려고 나왔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정의당이 민주당의 '아이콘'을 비판하다 '등 터진 새우'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문재인의 복지정책과 사드 응대를 비판한 심상정은 비아냥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한 것은 '너네 표 준거 후회한다', '다음 정당 투표는 없는 줄 알라'는 "채권자"들의 엄포. 사실상 '민주당 2중대'가 되라는 요구와 당의 정체성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 문득, 그 문제의 중심에 선거 제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선법은 이른바 1인 1표제를 채택하여(제146조 제2항) 유권자에게 별도의 정당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지역구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의 의사를 그대로 정당에 대한 지지의사로 의제하여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토록 하고 있는바(제189조 제1항), 이러한 비례대표제 방식에 의하면,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자나 그가 속한 정당 중 어느 일방만을 지지할 경우 지역구 후보자 개인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진정한 의사는 반영시킬 수 없으며, 후보자든 정당이든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신생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어 기존의 세력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실제 지지도를 초과하여 그 세력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여 주게 되는바, 이는 선거에 있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0헌마91·112·134(병합) 전원재판부>
2001년 헌법재판소는 '1인 1표제' 하의 비례 의석 배분 방식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그 후속 조치로 2004년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역사적"인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인 2표제 실시와 함께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원내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정당투표는 소신투표'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1인 2표제 하의 비례대표는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정당투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원내 교섭 단체의 조건인 20석을 얻으려면 지역구에서도 10석 가까이 얻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은 것이 2010년 이래 등장한 '야권 연대'란 이름의 지역구 후보 단일화였다. 2012년 총선은 비록 여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통합진보당은 지역구에서 7석을 포함 13석을 얻는 선전을 했다.
그러나 진보 정당의 활로를 열어준 듯 보였던 정당 투표와 야권 연대는 사실 '독이 든 성배'였다. 진보 정당이 얻은 의석은 그들이 넓힌 외연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범 진보'라 지칭되는 민주당으로부터 '빌려온 표'에 기댄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빌린 것엔 늘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야권이 박빙으로 패한 선거에 출마한 진보정당 후보는 보수 후보 당선에 기여했다고 욕을 먹었다. '채권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경우 소위 "양념"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철수를 조롱하는 '간 보기'란 별명마저 얻고 말았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선출된 대표가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권 연대와 정당 투표 통해 다른 당 표를 끌어다 쓰니 그 '채무' 때문에 마침내 자신들이 누굴 대표하는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는지 잊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표의 등가성이 무시되는 현행 선거 제도하에서 또 강고한 양당 체제 하에서 진보 정당 또는 다른 소수정당이 원내 진출을 위해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페스트트랙 논란을 빚은 선거법 개정안이 꼭 통과되길 바란다. 비록, 의석을 300석으로 고정하면서 50% 연동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지만, 그 정도면 정의당이 소신대로 일하며 평상시 지지율인 6%만 정당투표로 받아도 9석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들 역시 지지율에 비례한 의석을 받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 제도가 잘 정착해 비례 대표도 더 늘어나고, 궁극적으로 100% 연동으로 바뀌면 우리 정당들도 점차 정책으로 경쟁할 수 있고 유권자도 맘에 없는 당에 표 던지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아가 의원들 역시 당선 가능성 때문에 자신의 노선과 다른 정당에 들어가 '미운 오리 새끼' 취급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