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믿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이 바로 법치국가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1968년생인 당신. 술집에서 민증 검사를 요구받는다면? "ㅎㅎ 내가 올해 50입니다. 첫째가 대학생이에요"라고 기분 좋은 볼맨 소리를 하며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신분증을 실제로 보여주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호주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제적 동안 인증이라고 좋아한 것도 잠시. 정말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술집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당신이 1968년생 덴마크 프레드릭 왕자라도 예외는 아니다.
호주인 공주를 맞이한 것으로 유명한 프레드릭 왕자 일행은 자국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고자 호주 퀸즈랜드를 찾았다. 물론, 밤에는 브리즈번의 야경이 보이는 술집에서 흑맥주도 한 잔 할 계획이었다. 퀸즈랜드 경찰들의 경호를 받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관광객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왕자 일행이 브리즈번 강변의 유명한 술집인 제이드 붓다를 찾았을 때 사건은 시작되었다. 사설 경비원은 늘 하던 대로 일행에 신분증 검사를 요구했고,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왕자의 출입을 거부했다. 경호를 담당하던 경찰이 주정부의 담당자와 직접 전화 통화로 신원 확인을 마치고 10여 분이 흐른 뒤에 덴마크 왕자 일행은 입장할 수 있었다고.
재미있는 일은 다음 날 일어났다. 퀸즈랜드 주 경찰 총수가 간밤의 소동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높은 분께 "결례"가 생기면 경찰 간부들이 사과하는 것을 종종 본 우리에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과의 대상이 왕자 일행이 아닌 술집 경비 담당자였다는 사실.
퀸즈랜드 주 경찰 총수는 여권이 없는 왕자를 경호 경찰들이 적법하지 않은 절차를 거쳐 술집에 입장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프레드릭 왕자 의문의 2패). 그는 폴 매카트니도 여권 없이 술집 입장은 안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말 호주 공연을 앞둔 폴 매카트니 메니져들은 명심해야 할 듯.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에 익숙한 우리에겐 믿기 힘든 장면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것이 융통성이 없기로 유명한 호주인의 특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권력을 가진 경찰이 경호하는 VIP가 분명해 보이는 이에게 내가 아는 법과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흔히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법질서이다. 그러나 법질서란 결코 강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호주 술집의 경비원처럼 내가 아는 법과 규정이 언제 어디서든 내가 아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신뢰가 바로 법질서 유지의 기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