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담론 제시해야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오랫동안 논의된 주제다. 학자, 기자, 비평가, 일반 시민까지 공적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 보태어 본 주제일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관제언론"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런 관심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세계화, 4차 산업혁명 따위처럼) 어떤 용어가 광범하게 쓰이다 보면 때로는 별 의미 없이 껍데기만 남는 현상을 자주 본다.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규정하는 많은 용어들도 (e.g., 제 4부)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맥락 없이 그냥 그럴싸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많이 쓰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이클 셔드슨의 <Why democracies need an unlovable press> 역시 제목만 보면 그저 비판적 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돌고 도는 이야기 정도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이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언론관에 기초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 이론에서 강조하는 언론의 기능에 대해 이리저리 뜯어본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가 민주주의와 언론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정작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셔드슨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민주주의는 'rule by the people'이라는 상투적 인식에 기초해 언론의 역할을 논하는 식이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가 부재한 셈이다. 바꿔 말하면 "대의민주주의라 불리는 현실의 정치제도와 언론은 무슨 관계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해도 문제가 될) 직접민주주의적 이상을 염두에 두고 언론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대의제도 하에서 시민의 의사결정이란 사실 우리를 대리할 대표를 선출하는 것에 국한된다. 그런데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온라인이라는 현대판 아고라에 모인 집단지성이 우리 삶과 직결되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다수의 동의에 따라 정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누구나 알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낭만적 상상력이 현실에서 유사하게 실현되었던 사회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의 언론과 민주주의에 관한 일반 담론들은 보통 제도권 언론의 역할에 관한 것이 아니라 팟캐스트, 시민참여언론 등 직접민주주의적 이상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에서 제도권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보통 특정 매체의 정치적 편향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함의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룬다. 게다가 이런 논의도 현존하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함의가 아니라 언론과 민주주의의 규범적 관계를 바탕에 두고 해당 언론을 비판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특정 언론의 위기와 한국의 민주주의란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보통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바른 언론상(e.g., 비판적 언론)을 전제로 한 뒤, 해당 언론의 상황이 바른 언론상에 부합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것에서 논의가 끝난다. 구체적으로 그 문제점이 어떻게 현존 한국 정치제도나 과정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혹은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언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셔드슨이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마지막으로 제시한 것은(publicizing representative democracy) 흥미롭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닌, 구체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홍보하라는 주문이다. 촛불시위에 대한 한국 언론의 찬사를 돌이켜 보자. 많은 이야기들이 뉴스를 통해 배출되었지만 가장 빈번하게 거론된 담론은 바로 국민주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발생한 하나의 해프닝이 "시민의회" 주장이었다. 언론이 현존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이상적 정체 체제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집단지성이 산으로 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언론은 대의민주주의를 어떻게 홍보해야 할까? 셔드슨의 경우 먼저 언론이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서만 돌아가는 제도가 아님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정치 기사의 경우 대체로 볼거리가 많고 역할극을 잘 하는 국회의원 중심이다. 물론, 그들이 정치과정의 한 축인 것은 분명하지만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부에 관한 뉴스는 대통령 관련 기사를 제외하면 주목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혹자들은 한국 언론이 자꾸 가르치려 든다고 화를 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대로 안 가르친다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물론, 나처럼 직접민주주의 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더 훌륭하다고 믿는 쪽이라면 이런 셔드슨의 주장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직접민주주의가 더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라 믿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언론도 여기에 편승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더 많이 가미해야 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곤 한다. 어쩌면 이것은 87년 민주화 이래 한국의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은 "국민이 주인입니다" 따위의 뭉클한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 발 나아가 한국의 대의민주주의가 받는 불신을 타파하기 위한 담론에 불을 지펴야 한다.
한국에서 대의민주주의가 불신받는 이유는 대게 내가 뽑았는데 뽑고 나면 내 말을 안 듣고, 일 잘 할 것 같은 사람은 표 줘봐야 사표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즉, 이는 선거제도의 문제다. 이런 문제의 제도가 오래 지속되니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하나의 정치문화가 된 것이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특정 선거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성 부족이다. 따라서 언론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담론을 키우는 것이다. 이미 일부 전문가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국민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언론의 역할은 부족했다. 언론이 진정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현 정부 임기 동안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은 논의가 오가는 장을 만들길 바란다!
<여담>
지난번 글에도 적었지만 한경오 사태 때문에 언론이 뭔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그러나 가르치는 (혹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제도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내가 제도언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들이 블로거나 팟캐스트 진행자보다 더 아는 것이 많고 전달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언론제도 덕분에 그들에게 부여된 정보에 대한 높은 접근성 때문이다. 누구나 대통령에 대한 기사와 글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청와대에 들어가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공적 영역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기 때문에 제도권 언론은 대의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이다. 이것이 한경오를 비판하되 마냥 미워하고 배척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진보 언론"도 어차피 "엘리트 계몽주의자"로 낙인찍혔으면 어쭙잖게 싸우지 말고 그냥 더 열심히 가르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