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by 흔한 서생
장면 1

논란을 일으켰던 故 백남기 씨의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되었다. 사필귀정이다. 하지만 "겨우" 정권 바뀐 것으로 이렇게 쉽게 결론이 날 사안이었다 생각하면 허탈한 면도 없지 않다. 서울대학병원은 시쳇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학 전문가들이 있는 곳 아닌가! 그런 전문가들의 의학적 판단조차 정치권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니 과연 이들의 견해와 판단에 대중들은 어떤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장면 2

도종환 장관의 입각과 관련 일군의 역사학자들과 비평가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그 이유로 도장관이 역사인식이 민족주의에 경도된 점을 들고 있다. 이미 학계에서 논파된 유사 역사학에 힘이 실릴 것에 대한 우려다. 그런데 이런 역사학자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거세다. 이들을 두고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강단 사학", 반민족적 "식민주의 사학"이라 칭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할 땐 민중사관에 물든 좌파 학자로 매도되고, 유사 역사학 비판할 땐 기득권 식민사학자가 되는 웃지 못할 현실이다.


다른 듯 보이는 두 장면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지성주의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반지성주의라 하면 대중들이 학자들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에 대한 반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은 학자나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반지성주의자가 아니란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식인으로 불리는 계층에 대한 반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식인도 반지성적일 수 있다. 과학적 근거를 거부하고 본인의 신념이나 정치적 정향에 따라 외인사를 병사라 고집하는 모습이 바로 반지성이다.


반지성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가늠할 수 없다. 앞서 말했 듯 지식 생산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반지성적일 수 있고 일반 대중 역시 지성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축적된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이다. 반지성주의는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신념 등에 배치되는 새로운 사실이나 지식을 거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지적 발견을 통해 기존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 대신 전자를 더 강화하기 위해 특정 사실과 지식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폐쇄적 태도, 즉 도그마에 빠진 상태를 의미한다.


편향성의 동원을 동력으로 활용하는 현실 정치는 반지성주의가 자라기 위한 좋은 토양이다. 지식인과 언론인의 현실정치 참여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는 그런 정치의 특성 때문이다. 비판과 견제를 사명하로 하는 이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순간 과거의 지성적 태도를 그대로 견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소위 변절 또는 특정 진영의 대변자로 전락한 비판적 지성인의 사례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이런 반지성주의적 풍토가 정치적 포퓰리즘과 결합하면서 대립하는 진영의 지지자들에게 까지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지성주의의 덫에 걸리는 순간 위대한 집단지성은 특정 정파를 옹호하는 홍위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불변의 진리나 절대선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지식이나 선악에 대한 판단은 특정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 밖에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반지성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태적 차원에 존재하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구성되는 사회적 구성의 과정에 더 민감해야 하겠다. 그 기본은 언제나 비판적 질의뿐이며, 이것이 없는 곳이 다름 아닌 "닫힌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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