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과 고위공직자 배제 원칙의 함정

여론은 디테일 아닌 프레임

by 흔한 서생

1960년 4월의 대한민국은 혁명의 열기로 가득했다. 한 때 국민적 존경을 받았던 이승만은 희대의 부정선거까지 동원해 영구집권을 꿈꿨지만 혁명의 불길 앞에서 결국 떨리는 음성으로 하야를 선언했다. "혁명"이란 말은 그 누구도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정언명령이 되었다. 혁명 이전의 모든 것은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과업을 수행할 주체로써 민주당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집권했다.


혁명의 열기는 불과 1년을 넘기지 못했다. 혁명에 아로새긴 국민적 열망은 느릿느릿 기어가는 절차적 민주주의 앞에서 조급함으로 변해갔다. 발포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에만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집권당은 계파 싸움에 분당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민주주의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혁명은 국민을 배신했다고 당시의 여론과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혁명 1주년이 되던 61년 4월엔 이미 혁명이란 단어가 가졌던 힘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혁명의 아들"이란 자칫 부담스러운 호명을 받았던 민주당은 어느덧 "구악 뺨치는" 따위의 수식어와 함께 이승만의 자유당과 등치 되는 신세가 되었다.


민주당의 미숙함과 부패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에 총부리를 겨눈 구악과 견주어 신악이라 칭하는 건 언어도단이었다. 하지만 이미 구악과 신악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신악은 잘 해야 본전 못 하면 못 할수록 '예전 그놈들보다 더한 놈들'이 될 뿐이었다. 결국 "구악 뺨치는 신악"은 "구국"의 일념으로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킨 정치군인에 의해 일소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당시의 민주당에게 "혁명의 아들"이란 호명은 훈장이자 족쇄였던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 "촛불 혁명"의 열기를 품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적폐 청산의 깃발을 휘날리며. 그 취지야 공감하지만 촛불과 적폐의 이분법은 반세기 전 장면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자칫 정권에 족쇄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고위공직자 배제 원칙 역시 비슷한 논리에서 위험한 족쇄일 수 있다. 그동안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를 너무 많이 본 국민들에게 이 원칙이 신선하게 다가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까지 인사청문회에서 본 것처럼 이 원칙이란 게 지켜지지 않을 경우 문대통령과 청문대상자들에게 내려질 평가는 이승만의 자유당과 장면의 민주당이 구악과 신악으로 등치 되는 것만큼 악의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고위공직자 배제 원칙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않았다면 분명 개별 사안들에 대한 문제의 경중에 대해 다퉈 볼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원칙을 이미 천명하여 도덕성이라는 프리미엄을 스스로 취한 상태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경중을 다툴 공간이 없어진다. 그것이 곧 '내로남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권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읍참마속을 통해 원칙을 지키며 자신에게 부여된 도덕/공정의 프리미엄을 계속 고수할 것인가, 혹은 당장 욕을 먹더라도 공개 사과 후 원칙을 폐기하거나 현실에 맞게 세부적인 내용을 정하는 것이다. 전자를 택하기엔 포기해야 할 후보자가 너무 많아지니 결국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론은 디테일이 아니라 프레임이다. 문재인표 고위공직자가 디테일한 부분에서 과거 정부 고위공직자들보다 훌륭할 수 있다. 그래서 부적절한 행동이란 측면에서 과거에 문제가 된 고위 공직자들과 다를 것 없다며 도매금으로 취급되면 억울한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5대 원칙" 같은 틀에 갇히는 순간 그 디테일한 차이는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건 "결국 그놈이 그놈"이란 여론이다. 그리고 그런 구도 속에서 제일 이득 보는 자들은 결국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은 개일 것이다. 박근혜 탄핵 여파로 그 세가 확연히 줄어든 사이비 보수에게 문재인 정부가 먹잇감을 주는 일이 없길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어폴로지(Apology) 짧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