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오" 사태는 어디로 갈까?

by 흔한 서생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소위 진보언론이라 불리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한경오)를 향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반감 이야기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론장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생경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비판의 이유를 살펴 보면 그 역사가 제법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판자들은 진보언론이 故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와 비극적 죽음에 한 축을 담당했으며, 그 불의한 팬 끝이 여차하면 文대통령을 향할 수도 있다는 서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언론 비판의 서사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장치는 엘리트와 대중의 갈등이다. 그리고 이 갈등은 두 가지 인식의 축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엘리트 의식을 가진 진보언론이 노무현과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비주류 정치인을 무시한다는 인식. 둘째, 진보언론이 대중을 오로지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집단지성이라 불리는 이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비이성적 집단 광기로만 여긴다는 인식. 이와 같은 인식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기에 김어준, 정봉주 등으로 대표되는 팟캐스트를 통해 노무현 시대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광범하게 퍼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들과 '엘리트 진보언론'에게 공동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집권세력 때문에 양자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물론,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깨시민"이라는 조어가 소위 "깨어있는 시민"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온라인상에서 사용된 것은 이미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촛불 혁명을 통한 朴정권의 몰락은 그동안 수면 아래 놓여있던 갈등을 수면 위로 부상케 했다. 촛불을 구성하는 여러 분파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이었던 文지지자들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표리부동한 엘리트 진보언론'이라는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거대 서사는 선거 중반 안철수의 부상을 저지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노무현과 문재인을 얕잡아 본다고 여겼던 엘리트 진보언론이 문재인을 견제하기 위해 안철수 킹메이킹에 나섰다는 주장이 팟캐스트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간 것이다. 이처럼 선거 기간 중 증폭된 갈등은 선거가 끝나고 어쩌면 이전까지의 일화보다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사안 앞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갈등은 예상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진보언론을 옹호하는 측은 1) 고전적 자유주의 언론 이론에서 강조하는 언론의 규범적 역할, 즉 견제와 균형 2)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진보언론이 담당해온 역할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며 양자의 갈등을 봉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앞서 文지지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진보언론에 관한 서사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언설은 '언론의 잘못을 넌지시 지적하는 듯하면서 여전히 가르치려 든다'는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해명에 대한 누리꾼들의 댓글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과연 이 사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한경오"로 통칭되는 진보언론이 노무현을 향해 던진 '조롱'과 '비방'에 대한 사과를 포함해 文정권에 대한 '발목 잡기 식 비판'을 하지 않겠다는 직간접적 선언을 하는 방법이 있다. 대선 기간 중 SBS에서 文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보도를 한 뒤에 사과 방송을 하고, 회사차원에서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선거 후엔 보도본부장을 경질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불가능한 상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이런 '화끈한' 사과가 없는 한 양자의 갈등관계는 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文대통령이 신이 아닌 이상에야 갈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소위 '허니문'이라 불리는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한경오"는 그런 비판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고, 이는 文지지자들의 진보언론 서사를 다시금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갈등을 그나마 가장 효과적으로 봉합하는 길은 (달갑지 않지만) 올 것이 분명한 자유한국당의 귀환일 것이다. 이들이 다시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돌아와 文지지자들과 진보언론의 공동의 적으로 자리한다면 표면적으로나마 이 갈등은 사그라들 것이다.


문제는 文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큰 실책을 하면서 또다시 진보언론의 비판을 받고 의도치 않게 야당의 비토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올 경우다. 盧시기엔 침묵했던 지지자들이지만 文의 시대엔 다를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지지자들의 존재는 정부의 정당한 정책수행 조차 어렵게 만드는 과거 보수야당의 잘못된 행태를 막아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 과거 보수정권 하에서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댓글부대나 박사모 사이엔 어쩌면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겨우 한 장? 그렇다. 잊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넘을 수 없는 한 장이지만, 잊는 순간 그곳에 남는 건 유사종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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