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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un 20. 2019

서울에서의 내 방들

둘이 함께 살게 되기까지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건 스무 살부터였다. 한쪽 면이 창이라 햇빛이 잘 들던 건물 끄트머리의 직사각형 원룸에서 잠자는 공간이 구분이 된 복층 오피스텔로 그리고 방이 2개인 지금의 빌라로 오는데 10년이 넘게 지났다.


혼자 살게 되기 전까진 딱 한 번 이사를 했다. 두 집 사이 거리가 100미터는 될까. 중학생이 될 때쯤 원래 논이었던 자리에 새로 집을 지었고, 대학에 들어가며 혼자 서울로 오기까지 쭉 그 집에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이사가 익숙해지지 않았다. 같은 집에 계속 사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다.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한 번, 살고 있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뻔해서 한 번 그리고 둘이 같이 살게 되면서.


대학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부모님이 얻어준 곳은 오래된 한옥의 문간방 같은 곳이었다. 당시 오빠도 대학생이었고 서울에서 친구와 살고 있었기에, 우리 둘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생각하면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생각은 전혀 못했다. 누군가의 집에 덤으로 있는 듯해 서러웠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외로운데 방이 너무 추워서 1주일 정도 지났을까, 결국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 여기에서 못 살 것 같아."


어떻게 돈을 융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별다른 말없이 오빠가 친구와 살고 있던 곳과 비슷하게 생긴 원룸을 전세로 얻어줬고 나는 그 원룸에서 살며 대학을 졸업했다. 회사에 들어간 후에도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출근길 버스에서 잠들어 지각을 하기 전까지는.


그제야 '교통비와 시간을 쓰면서 굳이 내가 여기에서 계속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 원룸 전세금을 가지고 상수동의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거라는 법원 통지를 받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확정 일자는 받았지만 순서 상 전세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 경매 전에 건물이 팔렸지만 모두 월세로 바꾼다는 말에 인근의 다른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지금 살고 있는 망원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8년 동안 쭉 그 오피스텔에 살았다. 솔직히 8년이나 됐다는 걸 전혀 체감하지 못한 채로 그냥 살았다. '좀 더 조용한 동네에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옷방이 따로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최소 3~4년 은 했을 거다. 이 말을 현실로 옮기는 데는 사실 내 의지보다는 지금의 하우스메이트 H의 힘이 컸다.


당시 나는 월세와 관리비로 50만 원씩을 내고 있었고, H의 집은 월세만 70만 원이었다. 두 사람의 월세를 합치면 100만 원도 넘는데, 이 돈이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좁은 슈퍼 싱글 침대도, 서로의 집을 오가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일도 슬슬 피곤해지던 참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애인 사이이고, 동시에 하우스메이트가 되는 거라는 전제 하에 하나의 집에서 살기로 했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지금보다 편하게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옷방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거였으니까.


우리는 검색에 들어갔고, 주요 조건은 이랬다.

- 상수, 합정 인근엔 살 만큼 살았다. 망원동으로 가자.  

- 보증금은 어찌어찌 1억까지는 가능하다. 월세는 적을수록 좋지만 70만 원 이하면 좋겠다.

- 방은 2개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낼 테니 복도가 아닌 거실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외에도 사생활 보호도 그렇고 벌레를 너무너무 무서워하니 1층은 안 되고 3층 정도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게 좋겠고, 베란다가 넓어서 짐도 두고 빨래도 널 수 있었으면 좋겠고,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는 있으면 좋겠고, 인간의 필수 행복 요소인 햇빛이 잘 들면 좋겠고, 주위가 조용한 편이지만 밤늦게 집에 오는 길이 무섭지 않으면 좋겠고,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사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간섭하는 스타일이면 성격 상 못 참을 것 같고 등등 다양한 조건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매일 퇴근 후에 직방과 다방, 부동산 블로그를  봤지만, 사진 상으로 마음에 쏙 드는 집은 보증금이나 월세가 예산 초과였고, 조금 망설이다 보면 이미 계약이 완료된 집으로 뜨기 일쑤였다. '어쨌든 집은 직접 봐야 하니까'하며 주말에 부동산을 찾았다.


세 가지 주요 조건에 맞는 집들을 보고 돌아온 후,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마음속 가득한 조건들에 비해 싱거웠다. '그 집이 뭔가 제일 사람 사는 집 같았어.' - '그럼 거기로 한다고 부동산에 전화한다?' - '그래.'


우리는 그렇게 망원동에 위치한 큰 방 1개와 작은 방 1개가 있고, 큰 방보다는 작고 작은 방보다는 큰 거실이 있으며, 엘리베이터는 없는 빌라의 3층 '방'이 아닌 '집'에서 함께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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