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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Mar 02. 2018

강아지 이름을 신중하게 지어야 하는 이유

"온도라는 이름을 짓기 까지."

#01_이름에 대한 편견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이름이었다. 이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서부터 꽤 진지하게 (그당시에는 고민할 게 별로 없었다) 해왔던 것 같다. 반 친구들의 이름과 그 아이들의 성격, 특징을 빅데이터삼아 분석하기도 했다. 가장 예쁜 아이는 왠지 이름도 예뻤기 때문이다. 그 이름 때문에 그 아이가 예쁘게 자란거라는 생각도 했다. 말썽꾸러기 녀석의 이름은 '순규'였다. 그때 굳어진 이상한 이름 일반화 오류에, 소녀시대 써니의 본명이 순규라는 말을 듣고 여전히 써니가 장난많은 멤버라고 믿고 있다.



이름이 상대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된다?

'은아', '경미', '진희', '민지', '다영이', '유정이' 등 그 이름에 대한 느낌은 사실 내가 아는 친구들이 만들어낸 허상일텐데, 누군가 내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을 가졌다면 '이 사람도 내 친구 ㅇㅇ처럼?'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름만으로 상대를 가늠해보는 소소한 습관이 조금씩 남아있는 거다. 말도 안되긴 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 사주를 믿는 것보다도 더 신빙성이 없는 말이니까. 다만 동시에 이름을 믿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내 이름이 싫어서요

내 이름은 정말 정말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내 모든 행동과 말투와 외모는 평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어리버리'라는 말이 유행하던 2001년 즈음에는, 그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어리버리'했던 이유는 목소리가 조금 굵었고, 말을 느리게 하면서도 거의 뜬금없는 얘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데 중학생 때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그 연장선으로 '4차원이다', '또라이다'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 다음으로 싫어하는 거였다.


방법을 찾아봤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말을 거의 안해본 적도 있다. 당연히 결과적으로 실패였고, 내 스스로 2시간의 침묵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그 이후로 '그냥 살자. 내맘이야. 이게 나야나' 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개썅마이웨이의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약간 삐뚤어졌던 사춘기 시절에는 '4차원' 같은 게 무슨 대단한 방패라고 생각했던 건지 "난 4차원이라서 그래"하며 당당, 아니 뻔뻔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어쨌든 4차원 사춘기 소녀에 걸맞지 않는 이름이라며 부모님에게 투덜거리곤 했다. 이름은 전적으로 부모님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별로 예쁘지가 않아. 왜 이렇게 기억에 잘 안남는 이름으로 했어?"


그럴때면 아빠는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은혜 혜'자 돌림으로 해서 큰아빠 딸도, 네 동생도 혜로 시작하잖아"라고 설명했다. 그럼 나는 또 "'채'가 들어가는 이름이 좋은데, 이름 바꾸면 안돼?"라고 대꾸하고.


이름이 싫었던 이유 중 전교에 똑같은 이름이 꽤 많았기 때문도 있었다. 한 학년에도 꼭 2명 이상은 있었고. 만약 그 아이가 더 인기가 많았다면... #비극의시작 왜, <또 오해영> 이라는 드라마도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오해영 사이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그리지 않았나. 한명은 절세미녀, 한명은 찐따.



이름에 대해서 무슨 할얘기가 그리 많냐고?


이름에 대한 긴 히스토리 덕에 강아지 이름은 내가 원했던 것처럼 '좋은 느낌'을 주는 걸로 정해주기로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거다.



#02_온도 너로 정했다!


: 곰인형 같은 온도의 외모에 걸맞는, 그러면서도 흔하지 않은, 동시에 매일 부르면서도 내 기분도 좋게 해주는 그런 너무 좋은 이름이 뭘까.


강아지 이름을 지을 때 고려해야할 것 중 하나가 매일 매일, 그 누구보다도 자주 부르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생각보다 더 더 많이 부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부르면서 집사의 기분도 좋아지는, 그런 이름으로 짓는 걸 추천한다. 이미 다들 아는 얘기일수 있다. "부자야~", "행복아~", "해피야~", "예쁜아~", "천재야~" 등등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나, 집사의 목표와 꿈을 엿볼 수 있는 이름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르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소리내어 "행복아~"라고 부르면, 조금 불행해도 잠시나마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세뇌효과처럼 말이다. 그래서 강아지 이름이 중요하다. 막 지으면 안된다.




*삶의 가치관을 강아지 이름으로 결정하기까지.


온도 ; 세상 누군가에게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 않기를


온도라는 말은, 사실 '도수'를 뜻하지만 내가 가진 '온도'에 대한 느낌, 사람들이 '온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딘지 따뜻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적당한 곳 어디쯤이다. 왠지 모르게, 설명하기 조금 어려울 순 있지만 훈훈한 느낌. 뭔가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느낌.


왜, 요즘 [언어의 온도], [문장의 온도] 등 책도 많이 나오고 있지 않나. 어떤 것의 '정도'를 나타낼 때 온도라는 말처럼 괜찮은 말이 또 있을까?



그렇게, 온도는 온도가 되었습니다.



방긋방긋 잘웃지오


온도라는 이름에 대해 사람들이 예쁘다, 너무 어울린다, 특이하다 이런 이야기를 해줄때면 괜히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온도, 라고 부를 때마다 마법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기도 하고.





#03_온도 너로 정했다!


온도는 그 이름답게 너무 따스하고 애교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차가워 무서운 것도 아닌 뭔가 어딘지 부족하지만 계속 보고싶은 그런 녀석이다.


그 이름처럼 늘 15년이 지나도, 적당한 온도로 나와 함께 해주길 바랄 뿐.


온도야! 하고 불렀을 때 지금처럼 밝게 다가와주길,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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