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박도 Feb 02. 2018

넉넉지 않은 자취생활에도 온도를 데려왔다

"온도씨, 내 월급 여깄어"

나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세상. 아무리 강아지를 좋아해도 키우기 까지 숱한 망설임의 시간들이 흐르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도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더라고요.


처음 강아지를 키울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 중 하나도 '돈'이었어요. 이것저것 비용부담을 감수한다고 쳐도, 아프기라도 하면 사람 병원비 보다 비싸기 때문에 진짜 진짜 돈에 대해서 미리 마련돼 있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정도였죠. 그래서 너무 키우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도 단지 가끔 애견카페에 가는 걸로, 언젠가 노후에 키우기로 기약하며 살아가게 되는 걸지도 몰라요.


그런데 찌질하고 가난한 제가 이상하게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고,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나도, 강아지도 그냥 가난하게, 그 대신 '함께', '행복하게'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강아지를 덜컥 데려온거죠.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일지라도 월급루팡할 준비를 하고 말이죠.


너무 겁먹지 말기.

결국 같이 살아가게 될테니까.


사람이 처음 이사를 할 때, 필요한 큰 물건만 어느 정도 구매하면 나중에는 밥을 먹거나, 가끔 옷을 사입거나 하는 소소한 지출이 있는 것처럼 강아지들도 마찬가지긴 했어요. '너무 겁을 먹었나? 별로 돈 안드는데?'하고 자신만만해질 때 쯤 온도가 아파서 병원비로 몇 십만원이 깨졌을 때 반성하긴 했지만요.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강아지 가족이 주는 기쁨을 모르고 살기에는 아쉬웠을 것 같아요. 비록 좋은 장난감, 비싼 최신식 장비는 못사주지만 온도가 원하는 건 천원짜리 공 던져주는 집사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쩐지 가난해보이는 온도씨...


한동안 집값이 비싸서 (?)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기도 했다죠.


온도야, 니가 고생이 많다 :)
괜찮다개~~~~~~~~ 라기엔 표정이 어두운 온도씨ㅋㅋㅋ



온도와 동거하기 첫번째 지출 영수증
----------------------
온도의 집값         9만원
온도의 사료값     7만원
소소한 장난감     5천원
온도의 물,밥그릇 1만원
온도의 배변판     2만원
----------------------
총 19만 5천원


온도가 온 후 첫 일주일. 최소한의 물건만 구매했는데도, 거의 20만원에 가까운 지출이 발생했어요. 충분히 돈에 대해 생각했음에도 한달도 안돼서 20 정도가 들다보니 슬슬 걱정도 되고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긴 하더라고요. 처음엔 온도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알아가는 단계다 보니 "말도 안 듣는 녀석에게 이렇게 돈을 쏟아 부어도 괜찮은 걸까?"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에요. 아직 가족이라는 생각보다는 귀여운 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단 주의할 점은 나중엔 나보다 강아지한테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는 거예요. "점점 키울수록 더 좋은 사료, 더 맛있고 건강한 사료 먹이고 싶은 게 집사마음"이기 때문에 초기에 돈을 아끼던 것이 다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요. 결국, 어차피 나중엔 자연스럽게 많이 쓰게 될테니까 너무 돈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내 밥은 굶더라도, 너는 좋은 거 먹어



점차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거예요.



마음이 바뀐, 결정적인 순간


늘, 내가 온도에게 사주는 것, 해주는 것만 생각했어요. 나만 고생하고 '정말 집사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푸념한 적도 많았어요.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내가 온도에게 해주는 것보다 온도가 날 위해 주고 있는게 훨씬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이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이제알았냐개!!"


예민해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가끔은 우울해서 혼자 울기도 했거든요. 울다가 지쳐 잠든 밤도 여럿 있었죠. 그럴 때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거나 준군에게 위로를 갈구했던 것 같아요. 힘이 들었고 모든 것이 싫어질 때 그런 순간에, 온도가 내게 다가온 거예요.


울고 있는 제 곁으로 조용히 와서는 제 차가운 발을 베개삼아 누워서 자던 녀석. 그게 왜 이렇게 뭉클하고 감동적이던지요.


발 위에서 잠을 청하는 온도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슬퍼하던 나약한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온도. 아직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을 뿐인 이 작은 생명체는 저를 변화시키기 충분했어요. 머릿속에 온통 나를 괴롭히는 모진 말들, 나를 향해 화살을 겨누는 듯한 날카로운 행동들로 가득차 있었던, 언제부턴가 늘 상처투성이로 살았던 내 삶이 한 순간에 뒤바뀐 순간이었어요.

 


온도, 너 내 감정을 느낄 수 있는거야?


헤헤헤헤 나는 천사라개



신기해요 참. 인연이라는 게. 동물이 저와 교감을 하고, 제 마음을 읽어준다는 게, 진짜 너무 아름다운 경험같아서 시간이 갈수록 더 소중해집니다. 이제 정말 내 가족인 이 녀석이 언제든, 어디서든 항상 내 곁에 있어줄테니까. 그런 순간들 당신에게도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도 골든두들을 키워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