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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Sep 27. 2019

뉴욕 지하철 노숙자의 구걸법

뉴욕의 온도

뉴욕에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너무 많은 노숙자 때문이었다. 뉴욕 내에서도 곯머리란다. 한번은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다운타운에 가고 있는데 웬 젊은 남녀가 말을 걸었다. 뉴욕타임즈 인턴들이었다. 홈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한테 왜 그런걸 묻지?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와구와구 어울려 살다보니 인종과 관계없이 전부 뉴욕시민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게 좋다. 좋은 것과는 별개로 영어로 내 생각을 유창하게 전하지 못하니 실상 답답한 이방인 신분이긴 하다. 있는 말 없는 말을 동원해 뉴욕의 노숙자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아이 띵크... #!^$@^#!% 뉴욕에 노숙자가 너무 많아서 놀랐어. 우리나라, 서울에는 노숙자가 별로 없거든. 노숙자에 대한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건지, 효과가 없는 건지, 정치적인 건지 모르겠다. 근데 노숙자에게 돈을 지급한다거나 하는 건 좋지 않고, 일자리라던가 교육이나 살아갈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루 빨리 실시했으면 좋겠다. 노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 사회적으로도 안좋고 여행객들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잖아"  


이름이랑 나이를 물어봐서 대충 알려주고 가던 길을 걸었다. 걸어가면서 이렇게 말할껄, 그 말은 하지 말껄 막 또 찐따처럼 이런 저런 후회를 했다. 노숙자에 대해 사실 별로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아서겠지. 


나중에 뉴욕도서관 무료클래스 영어선생님한테 물어보니 노숙자들은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어서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내 의견을 지적했다. 또한 보수정권이냐 진보정권이냐에 따라서도 노숙자를 위한 기부금 규모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그냥 발을 빼는 편이 낫다 싶었다.  



하철에서도 노숙자를 매일 본다. 지하철을 활보하는 건 당연하고, 지하철에 누워서 자는 노숙자도 있다. 보통 세자리씩 앉도록 돼있는 지하철 의자에 주워온 쓰레기와 옷가지들을 늘어놓고 혼자 다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는 노숙자가 별로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상대적인 거고, 스토리텔링형 앵벌이를 종종 볼 수 있긴 했다. 어찌 사람은 매번 다른데, 레파토리는 항상 똑같아. 무릎 위를 터치하며 물건이나 전단지를 올려놓는 사람들도 흔하다. 


뉴욕의 노숙자는 그에 비해서 과격하고 직설적이다. 때론 '돈 좀 줘'라고 위협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사람들에게 다이렉트로 하소연 하는 것 같다.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모두 생략.  

저기 있잖아. 나 오늘 아무 것도 못먹었어. 배가 너무 고파. 돈은 주지 않아도 되고, 혹시 먹을 거 있는 사람 나한테 줄 수 있어? 아무거나 괜찮아


뉴욕 지하철에서 두 번 목격한 대사다. 밥좀 주소, 이건데 어딘지 담백하게 느껴졌다. 뭐 이리 쿨해? 노숙자마저 쿨하기 있냐. 


그때였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지하철은 만원이었는데 라틴 계통으로 보이는 남자가 살짝 노숙자를 향해 손짓 했다. 늦은 퇴근을 하는 모양인지 와이셔츠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갈색 곱슬머리, 작은 체구에 똘망똘망한 눈빛이 멋진 남자였다. 한 손에는 요거트와 바나나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마무리 못한 일을 하면서 혹은 넷플릭스 한 편 때리면서 먹으려던 야식이었겠지. 그는 조용히, 그러나 흔쾌히 노숙자에게 음식을 건넸다. 


노숙자는 음식을 받아들고서는 


Thank you, sir


쿨하게 한 마디를 남기고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 장면이 생소했다. 낯설어서 기억에 남았다. 구질구질한 구걸도 없었고 호의를 베풀며 꼴사나운 생색도 없었다. 고맙다고 복받으라고 진짜 착하다라는 호들갑스런 감사인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빨랐으며 이상하게 담백했다. 너무 쿨해서인지 오히려 꽤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 지하철에서 본 여자도 노숙자가 말을 걸자 기꺼이 이어폰을 빼고 뭐라고 하는지 다시 물었다. 그 노숙자 역시 음식을 줄 수 있냐고 했다. 여자는 가방에서 먹던 자몽쥬스를 꺼내며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노숙자는 고맙다며 자리를 떠났다. 


덤덤한 친절. 솔직한 고백. 뉴욕의 어떤 장면은 서울로 돌아가서도 가끔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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