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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도 Sep 30. 2019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삶

작은 전화기 하나가 내 정신을 지배하는 요즘이다. 뉴스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확인한다지만, 실상 연예뉴스란을 더 자주 들락거리면서 멋지고 화려한 연예인들의 외모와 나를 비교하는  건 물론이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친구 사진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심지어 모르지만 잘나가는 사람들을 팔로우하며 내 인생과 너무나 다르다고 자괴감에 빠질 때도 많다.


모든 이야기들이 타인을 향한다. 타인이 입은 옷, 타인의 잘 꾸민 집 사진, 타인의 호화로운 해외여행지, 타인이 하는 그들만의 리그 이야기.  


'남들은 이렇게 사는 구나...'


이런 생각류의 끝에는 늘 초라한 내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모양이지?'


가만히 있던 내 자신이 공격대상이 된다. 비교를 하며 한껏 우울해진 탓에 자존감은 바닥을 친 것을 넘어 아예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들처럼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궂은 일도 마다않고 꾸준히 일을 해왔고,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괜히 억울한 기분마저 들 때가 있다.


엄마가 엄마 친구 딸을 비교하면 아득바득 화를 내며 비교하지 말라, 비교가 제일 나쁘다 설교를 하면서 정작 내가 남과 나를 가장 자주, 심하게 비교를 하고 있었다.


비교의 끝은 결코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비교를 하다가 한없이 우울해져버린다. '나는 안될 거야' 체념하게 되기도 한다. 비교를 해서 내가 우위를 차지한 적이 있던가? 아마 없을 거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나보다 어떤 면에서든 더 인정받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또 비교가 될만큼 잘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쉽게 퍼지기 때문에 나는 항상 지는 게임에서 비교를 하느라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거다.



비교를 멈추려고 내가 한 일


전화기 없이, 어떤 것을 보지 않고 비교를 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비교를 할 때마다 내가 전화기를 들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로는 비교를 멈추기 위해 보던 것을 손에서 내려 놓는다. 정신적으로 점차 피폐해지는 것이 느껴질 때쯤 반사적으로 전화기 화면을 끈다.


그런다고 비교마저 머릿속에서 멈춰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후에 나를 지켜주기 위한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


내 스스로 나를 격려해주기. 억지로라도 내가 잘하는 걸 생각해보기. '너는 그래도 이건 잘하잖아. 비교할 시간에 그걸 해보자' 라던가, 만약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것 중에 소중한 것을 생각해봐도 좋다.


가령 나는 우리 강아지 온도가 있으니, 힘을 내서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을 하며 비교의 순간을 빠져나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지만 임팩트 있는 생각들이 비교의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도 한다.


비교하지 말자, 라는 말보다는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될 때면 가까스로라도 다시 나를 찾아오는 편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현실로 복귀할 때 좀 더 도움이 되더라.



나는 왜 자꾸 타인과 나를 비교할까?


비교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 멈출 수 없을 때 왜 자꾸 비교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우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게 감사할 일이 맞을까?'라고 쓸데없이 엄격하게 감사할 상황을 구분할 정도로 나는 감사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예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더 가지지 못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에만 집착하곤 했다.


너무 뻔해서 쓰기도 민망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이고, 감사할 일이거늘, 그럴 때도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아꼈다. 다른 걸 먹고 싶었는데 하필 이걸 먹게 되었다는 둥, 저 음식점에 가보고 싶었는데 비싸서 못가는 게 아쉽다는 둥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진 탓이었다.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한다면, 그런 쉽지만 작은 마음가짐만으로도 상황은 조금 나아질 수 있다. 만약 감사할 줄 안다면, 현재의 내 모습에도 부족한 것만 찾아내기 보다는 그 자체로도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응원할 수 있을 터 였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잘살고 싶다면


내가 비교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실 지금보다 더 잘 하고 싶고, 잘 살고 싶어서 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비교를 통해 자극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비교를 통해 성장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해서 하기 보다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남들만큼은 살아야지', '저 사람도 저렇게 하는데 나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한다면 오래 가지 못하더라.



나에게 집중 하는 삶이 좋아


온전히 나를 생각하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더 들여다보는 것.


내가 내린 결론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이었다. 나를 더 사랑하자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 간단명료하다. 타인을 보느라 나를 놓치는 대신에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들어주는 연습을 해볼 생각이다. 타인의 집을 보는 대신 내 방을 한 번 더 둘러볼 계획이고, 타인의 외모를 구경할 시간에 나를 위해 운동할 시간을 내어볼까 한다. 다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지만, 오랜시간 비교하던 습관을 개선하려면 의식적으로, 온전히 나를 보듬어주는 노력이 아주 필요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뭐 하나 쉽게 주어지는 법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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