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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Oct 14. 2023

1.비우포트(Beaufort)섬의 기적

바다가 말을 거는 곳 

1.    비우포트(Beaufort island)섬의 기적

 

- 바다가 말을 거는 곳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 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입니다.               


('파도'_ 유승우) 



나는 파도처럼 매번 다시, 또 다시.. 일어설 자신이 없었다. 

34년의 시간을 살아오며 ‘내 이름’의 정의를 내리고자 파도처럼 일어나며 살아왔지만

이번에는 다시 일어설 힘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었다. 






나는 5년째 섬에 살고 있다. 

처음 이 섬에 와서 외국인이 지은 이름.

Beaufort island.


꿈꾸었던 성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불안감이 해일처럼 들이쳤다. 

내가 일년에 오백만 원을 주고 살고 있는 작은 집의 계약기간은 한달이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나는.. 이제 그만 이 섬에서 집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섬 속의 섬에 위치한 이 곳에서 펼쳐보려 했던 나의 꿈과 목표와 이상은 

오아시스의 환상처럼 느껴졌다.  오래 지속된 환상.

‘가족 같음’을 앞세워 식구가 되어보고자 했던 나의 숨겨둔 마음은 

당연하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듯 느껴졌다. 


이 섬에서 만난 아버지들, 엄마들, 삼촌들 모두… 허상 같은 이름들이라 느껴졌다. 

나 하나 떠나도 누구하나 크게 동요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남은 딱 한달만 지내고 나가자.’

그런데..

5년을 살며 이 섬에서 살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바다’ 

나는 단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많은 해내야 하는 일들.

경계 주변에서 어울려야 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을

마치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려 둔 짐짝처럼 정의 내렸다. 

스스로 저 바다를 감옥의 창살로 삼았다.


애써 미소를 띄고 모범수용자가 되고 싶어하는 무기징역수였다. 

그저 이 섬과 , 이루고 싶었던 꿈의 끝자락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함께 글을 쓰던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이 섬에 와서 글을 쓰는 작가이다. 

매일 밤, 밤도둑처럼 가벼운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 든다.

그녀는 바다에 누워 하늘의 달빛을 만끽하는 한량의 삶에서 피어오르는 영감을 잡는 듯 보였다. 

그녀가 나를 이끌었다.

"우리 바다 들어갑시다" 


8월의 여름. 밤 11시 11분. 

입은 옷 그대로 어두컴컴한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그녀.

나는 홀린듯 모래 위를 사박사박 걸으며 천천히 밤바다로 들어갔다. 

발 아래 부드러운 모래들이 내 발을 휘어 감는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끌어안은 바다는 적당히 시원하면서 미지근했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바다 위에 두둥실 떠오른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귀가 물에 다 잠겨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온 몸이 바다에 둥둥 떠서 포근한 이부자리에 널부러진 듯 눕게 된다.

눈 앞에 밤하늘이 펼쳐진다. 

잡힐 듯 보이지 않는 별들이 총총히 밝다. 

가슴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듯 몽글몽글하고 어두우면서도 밝은 기분.

기분 좋은 불안정감.


'이대로 새벽이 올 때까지, 아침이 올 때까지 있어야지.'

온 바다가 내 마음의 세포까지 꽉 차오르는 느낌.

나는 이 생애의 정보를 다 끌어안은 채 그 푸른 품 속에 울렁거리며 안겨있었다. 



그 순간

찰나의 시간. 

내 마음 속 우주의 모든 것이 격변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끌어안고 일렁이는 파도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린 그 순간부터 였다. 





"나랑 같이 있자"




‘뭐라고?’

나는 순간 놀라서 모랫바닥으로 다리를 내렸다. 


이상했다. 

분명히 내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어떤 목소리가. 


그게 파도의 소리였는지 바다의 메아리였는지 

설마 사람의 말소리인지 분간이 안갔다.


아니 이 바다에 혹시 도깨비라도 살았나? 

내가 요새 너무 우울해 져서 환청이라도 들었나?

다시 귀를 쫑긋 세워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지만,

조용하게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밤의 고요만이 흐를 뿐이었다. 


방금 들은 목소리는 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함께 바다에 들어온 작가는 신나게 밤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모래에 파묻힌 조개를 캐는 것에 심취해있었다.

그 목소리는 나만 들은 걸까?


나는 그냥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기를 포기했다. 


직감적으로 

파도가 내게 말을 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마법 같은 일이란 말인 가!

집으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온 몸에 묻은 바다 모래와 소금기를 다시 흘려 보내줬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으나 

그 날은 오랜만에 깊은 숙면에 들 수 있었다.


- 다음 날 -


해가 쨍쨍한 아침.

어제 밤이 마치 꿈결인가 싶었다.

마당에는 빨랫줄에 대충 걸쳐 놓은 수영복에서 짠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바닷가로 뛰어나갔다. 


흰구름이 포실포실한 하늘 아래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바다가 어느 새 낯빛을 투명하게 바꾼 채 햇살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흰 거품이 뽀글뽀글 일어나는 바다를 향해 속삭였다. 



"바다야. 네가 말한 거 맞지?

나 … 새벽에 다시 올 게!”   




그렇게

새벽바다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8월의 여름.

am 05:40.  코랄빛 일출의 시작.




"정말 원하는 게 뭐야?

어떤 인내와 시련이 함께 온다해도 

그 끝에 네가 정말 원하는 거 말이야." 




이제 익숙해진 

새벽바다의 목소리가 다시 내게 물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거…? 

사랑…

사람… 

마음….  그리고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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