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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Oct 14. 2023

2.지옥도(1)

-지옥도1. 어린 시절의 냄새들

2.    지옥도

 

-      지옥도1.  어린 시절의 냄새들




어릴 적 나는 부산의 흔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아파트 입구 양쪽에는 작은 화단이 꾸며져 있었다. 


그 곳에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금목서’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다. 


가을이 되면 금목서 나무에 작고 올망졸망한 노랑 금빛의 꽃들이 만개했고 

그 꽃에서 마치 하늘나라 어딘가 살고 있는 선녀님의 옷자락에서 날 듯한 

금빛과 노랑 빛의 향기로운 과일과 구름의 향기가 나는 듯 했다. 


그 향이 만리까지 퍼진다 해서 ‘만리향’이라고도 한다. 



12살의 나는 학교가 끝나면 아파트 16층 집에 들러 

가방을 던져두고 1층으로 내려온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풍기는 꽃향기를 맡는 것은 짧았던 인생에 한 가닥 즐거움이었다. 



가끔 엄마가 외출을 하고 조금 늦어지는 날에는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날 때까지 그 향기를 맡으며 놀았다. 



아버지는 늘상 술과 함께 새벽 귀가를 했고 

나이차이가 많았던 오빠와 언니도 야자가 끝나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왔다. 


나는 온종일 티브이에서 나오는 투니버스 만화를 정주행 하거나 

대형 오디오세트에 카세트 테이프를 넣고 만화음악이나 가요음악을 감상하며 숙제를 하곤 했다. 


그러다 가을 저녁에는 항상 그 꽃향기를 맡으러 내려가는 것이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날. 


아파트 1층 집의 부엌 창가에선 

누군가의 가족이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고 밥을 짓는 냄새가 풍긴다. 


잘 들리진 않지만 

그날 학교를 다녀온 이야기

아버지가 들어와 이런저런 실없는 농담을 하고 

어머니는 살가운 잔소리가 새어 나오는 집.



그런 집의 밥냄새와 

금목서의 꽃향기가 아련하게 섞여서 코를 간지럽힌다. 



가슴 속에 몽글몽글한 감정이 뒤섞여 혼자 아련해 진다. 


노을이 떨어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나는 싸늘한 바람에 양팔을 부비다가 집으로 올라온다. 



오늘의 골든 타임이 끝났다.


다시 어둠이 짙어 진다.



오늘 밤도 부디 오빠와 언니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길 기다린다. 

아버지의 분노가 시작되기 전에. 



엄마가 늦은 저녁을 챙기러 부랴부랴 집에 도착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늦은 밥을 먹고, 씻고 

학교에서 내 준 알림장을 확인하고 

그림일기를 쓰고 나면 



기다리고 싶지 않는 아버지를 불가항력적으로 기다린다. 


아버지가 들어오기 전에 

오빠 언니가 도착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가 위험하다. 

엄마가 빨리 이웃집 어딘 가에 피신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는다.


시계가 느려진다. 

심장은 빨라진다.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7살쯤부터 였을까 –


어린 아이였지만 

나는 우리 집에서 일찍 잠에 들 수 없었다.



부디 오늘 밤은 무사히 넘어가길 

하늘에 계신 알 수 없는 신과 부처님과 하나님과 조상님과 마리아님과 

모든 이름 붙여진 신들에게 빌고 또 빈다. 



‘오늘 밤이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세요… 

아빠가 깊은 잠에 빠지게 해주세요.

그 잠에서 깨지 않게 해주세요.’ 



수많은 신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던 그 기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 


언제부터 였을까.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 되던 해부터 

나의 기도는 바뀌었다. 



‘아빠가 집에 오지 않게 해주세요.

아빠가 잠에 들어 영원히 깨지 않게 해주세요.’ 



10살, 11살, 12살, 13살,  그리고 14살이 되던 해.. 


간절하면 주변에 있던 도깨비라도 도와준다던데 … 

서글픈 어린아이의 간절함이 

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을까. 



다른 안전한 방식으로 

내 소원은 이뤄졌다. 



14살이 되던 해의 1월1일. 새해. 

온 친척과 가족이 큰 집이었던 

우리 집에 다 모였던 밤. 


거실에서 오래 버티며 

집안의 모든 것을 봐왔을 백색 항아리가 

아빠의 손을 거쳐 엄마의 머리에 던져졌다. 



와장창.

지지하던 땅이 갈라지든 모든 것이 깨지고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머리에선 피가 흘렀고 

나는 티비에서나 보던 119구급대원 아저씨들을 

우리집 현관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다들 쉬쉬하던 친인척들은 그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른들은 취한 아빠를 붙잡고 안방에 눌러 앉혔고 

우느라 앞이 보이지 않고 휘청거리던 나는 

사촌들과 함께 작은 방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누군가의 불행에 감히 끼어들지 않고 

신고조차 무의미했던 시대. 

가족이 뭘까

인연이 뭘까 

정답을 알 수 없는 의문과 원망이 마음속에 해석 불가능한 추상화를 그려댔다. 

그 밤이 지나고 



그렇게 부모님의 오랜 인연은 끝이 났다. 

나는 오빠, 언니와도 헤어지고 

혼자 엄마를 따라나와 살게 되었다. 



내가 아닌 엄마의 상처와 피를 통해 

굳어가던 땅이 거세게 갈라진 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후로 

소원을 빌지 않을 수 있었다.



내 마음속 쌓여왔던 지옥도는 

어느새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 봉인되고 

나는 매일 밤 짙어지는 어둠과 함께 불안에 떨지 않게 되었다. 




‘인생에 격변을 겪으려면 누군가의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필요한가 봐…’



나는 14살에 삶의 무거운 이치를 하나 깨달은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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