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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Oct 14. 2023

2.지옥도(2)

-지옥도2. 서울 드림(Seoul Dream)

- 지옥도2. 서울 드림(Seoul Dream)




2009년. 

 

나는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원하던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새 입시준비를 명분삼아 

1년 휴학계를 내고도 부산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다. 

집 놔두고 구지 돈 써가며 비싼 서울생활을 고수한 이유는 


'서울 드림'


나는 무조건 서울이어야 했다



기숙사도 빠지고 집도 없는데 어디서 살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걱정말라고 한다. 


그리고 큰 캐리어에 최소한의 짐을 우겨 넣는다. 



강북으로, 분당으로

여기저기 자취하는 동기들에게 연락을 한다. 

 

친한 듯 친하지 못했던 동기들은 정이 많아서 

나를 받아준다. 

분당의 오피스텔에..강북의 원룸에.. 

 

처음 동기가 살고있는 분당 오피스텔에 들어갔더니 

아는 얼굴이 한명 더 와있다. 

바로 윗 학번의 여자선배. 

 

같이 살기로 한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었구나..’

 

어색한 여자 셋의 동거. 

그 오피스텔에서 한 일주일쯤 버텼다.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가끔 조용히 할 일은 하다가 

바쁜 듯 나가고

다시 들어와 하루의 안부를 스치듯 나누고 

불편하게 잠을 청한다.

 

그렇게 일주일 후 –

나는 동기에게 

다른 살 곳을 구했다’는 

거짓말을 한 채 작별을 고했다.

 

친구는 아마 내 거짓말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묵인해 주었던 게 아닐까. 

 

두번째로 갔던 곳은 강북의 원룸이었다. 

 

이제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전화를 걸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무거운 손가락.. 떨어지지 않는 말.

 

하지만 역시나 착한 내 친구는 와도 된다고 웃으며 받아주었다. 

 

친구가 잘되는 건 이렇게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내가 위태로울 때 그들이 나를 구해주기도 하니.

 

분당에서 강북으로.

복잡한 지하도에서 터지기 직전의 캐리어를 끌고 선 

높기도 한 잿빛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다시 걸어가고 

 

두시간이 걸려 강북에 도착해서 원룸을 찾느라 또 한참을 헤맨다. 

 

겨우 집을 찾아 초인종을 누르고 2년여만에 보는 고등학교 동창생의 얼굴.

 

친구는 방을 구할 때까지 편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찰나의 안심 이후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아 근데 있잖아… 

가끔이긴 한데… 남자친구가 집에 놀러 오거든 .. “ 



나는 더 활기차게 웃으며 괜찮다고 너스레를 떤다.

 



아, 당연히 괜찮지~ 나 거의 도서관가서 입시준비하고 .. 

주말까지 계속 알바할거니까 너의 밤 늦게 들어와서 잠만 잘걸? 

혹시 남친오는 날 문자 보내주면 알아서 시간보고 들어올께 ~~

근처에 대학동기가 또 산다고해서 ~ 별로 안친하긴 한데 

가끔 그 집으로 가도되니까~~ 너 편한대로 말해줘 ^^.” 

 


 

나의 본능은 미리 예감을 한다.

 

그래…여기도 오래 머물 진 못할거야..’ 

 



 

그 후 -  

 

가끔 온다던 친구의 남자친구는 생각보다 자주 방문했다. 

나는 새벽이 지나서 겨우 들어가거나 

혹은 찜질방에 가서 애써 신나게 혼자놀기 내공을 키우고

다음 날 아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친구가 가족들과 짧은 해외여행을 갔을 때 

그 남자친구가 찾아왔다. 

 

여자친구의 해외여행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의아했으나 구지 들어와서 짐을 챙기고 간다기에 

그러시라고 대답을 한다. 

 

틀어놓았던 핸드폰의 음악 소리를 키웠다. 

그 남자친구는 서랍에서 자기 티셔츠를 한 개 챙기더니 

음료를 하나 가져간다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그러고는 같이 한 캔 마시자고 하더니 침대에 털썩 앉아버린다. 

 

나는 급히 도서관에 가려던 길이라 말을 하고 

가방에 책을 챙겼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내일부터 지낼 곳을 얻었으니 

이따가 이삿짐 싸는 아저씨들이 올 거라는 말을 한다. 

 

혼자 뻘쭘해진 그는 자신도 가야한다며 짐을 챙겨서 나선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속으로 외친다. 

 



쓰레기 같은 놈..’



 

집안도 부자고 공부도 잘했고 얼굴도 예뻤던 

내 친구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을 때 순간 외로워던 마음에 부러움이 솜사탕처럼 

떠올랐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친구가 불쌍했다.

나는 친구가 돌아오면 저 쓰레기 같은 놈을 어떻게 떼어놓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있는 그대로 말 할 자신이 안생겼다. 

 

다행히 몇 달 후 – 

그 친구는 그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생기길 바래주며 다시 작별을 고했다. 

 

 



그 후 – 


 

나는 다시 케리어를 끌고 잿빛 서울의 지하도를 누비고 다녔다. 

 

땅 속의 미로 같았던 그 지하도.

 

탁한 누런 빛 조명 앞에 아른거리던 먼지들. 

 

흔들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한결같이 무표정으로 

회색빛 삶을 버티는 듯 보였던 그 사람들.

 

가끔 그때의 얼굴들은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색깔과 탁한 공기의 냄새는 떠오른다. 

 

참 많이도 헤매고다녔던 

그 지하철..

아니, 지옥철



 

그때 그곳을 지나친 사람들..

다들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비우포트 섬에서 글을 쓰는 지금..

당신들은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나요?

 

나의 꿈이었던 ‘서울’에 존재하고 있나요?’ 





 

서울’은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나의 꿈이자, 이상이자, 미래의 청사진이자 모험과 환상의 도시였다. 

 

말은 제주도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한다는 말이 당시에 괜히 있었을까. 

 

서울에서는 뭐든 하면 성공할 수 있고 삶이 하루하루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놓지 않았다. 

 



지옥철을 헤매고 다녀도 나는 놓을 수 없었다. 

 

그때 희망의 동앗줄이 하나 던져졌으니 – 

외사촌이 재수를 했고, 노력끝에 인서울에 성공했다는 소식. 

그러니 

함께 살 자취방을 얻어줄 테니 같이 살라는 집안의 통보. 

 



살았다..!'



 

매일 분당선 이매역을 갈때마다

도깨비가 있다면 나를 좀 도와달라는 소원이 먹힌 것일까..  

내 능력과 무관하게 태양볕이 지하굴을 뚫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때를 떠올려 보자면 - 



화불단행禍不單行 -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재앙 화, 아닐 불, 홀로 단, 다닐 행 

[풀이] 禍(화)는 하나로 그치지 않고 잇달아 옴을 이르는 말. 불행한 일이 겹치는 경우.




어릴 때 배웠던 이 글귀 하나가 이상하게 오랫동안 머리속에 맴돌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비극에 끌린다고 했다. 



마음 속 봉인된 지옥도 때문이었는지

나는 내 스스로 매번 불행과 불안정을 선택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때부터 였을까 




나는 이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에는 마가 많이 낀다.'

(좋은 일이 오기 전에는 여러 힘든 일을 겪게 된다)





동갑내기 외사촌과 함께 건대입구역에 

방을 구하고 살면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했다. 


2009년. 그 해에 나는 자유로웠고 즐거웠고 새로운 식구들을 만났다. 


2023년 현재까지 피가 섞인 혈연지간보다 더 서로를 잘 알고 

많은 것을 나누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진짜 식구들’을 그때 만났다. 



현재 나의 스승과 동료와 이모와 동생과 삼촌들이 

모두 그 해에 인연으로 줄줄이 연결되었고 끈끈해졌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홀로 헤매이던 망망대해의 바다 위에서 

한 줄기 튼튼한 등대가 내 인생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사람을 편협되게 평가하며 기준에 안맞으면 싫어하거나 무시하고.  

선배들에게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를 수시로 듣고,

누구에게도 뭔가를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마음을 온전히 나누지 못하고, 

온통 날선 시비와 알 수 없는 원망과 나태함과 고집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느린 속도였지만 천천히 바뀌어 갔다. 




나는 지혜롭고 다정하고 빠릿빠릿하고 깨끗하고 재주가 있어 쓸모가 많고 마음이 깊고 넓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천천히 변해갔다. 

여전히 가끔은 날이 서있고 까다롭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척하고 계산을 하지만..


분명히 나는 내가 꿈꾸던 내가 되어왔다. 





나는

그 터널을 지나온 

지금의 내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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