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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바다 Oct 14. 2023

1.비우포트(Beaufort)섬의 기적(3)

미래 진행형 꿈 

-미래 진행형 꿈 




사람은 정말 '꿈'대로 된다. 

5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나의 꿈은 미래 진행형이다. 



13살이었던 어린 나의 꿈은 – 

'세상의 나쁜 놈들을 다 처단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 존재' 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던 90년대는 한창 거품같은 경제성장으로 나름의 풍요를 누렸던 시대. 

문화의 르네상스 같은 시대이자 

예상외의 비극을 겪으며 크게 휘청거렸던 시대.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시대와 결을 같이한다. 

나는 그 시절, 참으로 지독한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13살까지 짧았던 생의 초기단계에 꽤 자주 정신적 타격을 받았다.

아버지는 술과의 대결에서 스스로 늘 패배자를 자청했다. 

한 잔 두 잔, 그 술잔에 함께 출렁거린 인생의 열등감과 분노는 집에 와서 표출되었다. 

깨져 나가는 그릇들과 물건과 함께 13살의 아이도 함께 조각조각 깨져 나갔다.  


14살이 되고 부모님은 별거에 들어갔다. 

내 인생의 두려움은 끝나고 마음에는 숨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13년간 새겨진 마음의 지옥도는 어느 한 켠에 봉인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내는 시간이 있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장래 희망이란 것은 직업을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지금과 너의 앞날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그 희망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도울 수 있는지를 물어야했다. 


그 시대는 격변의 르네상스였지만 

개개인의 마음에 다정하진 못했나 보다. 

어쨋든 ㅡ 14살의 나는 장래희망 칸에 13살의 꿈 그대로 '판사' 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미 그 길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가는 중이었다. 



나는 타인의 불행에까지 개입하고 책임지며 살 수 없는 아이였다.

타인의 불행까지 나누며 감당하기엔 감정의 그릇이 단단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춘기의 오랜 터널을 지나던 어느 날. 


2002년. 12월의 코 끝이 쌀쌀했던 겨울 밤. 

우리집의 작은 TV속에선 명작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거실 유리창 너머엔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밤 12시쯤 시작된 영화는 새벽 3시가 다되어서 끝났다.


집에 홀로 있었던 그 겨울 밤. 

그 영화는 내 '꿈'을 송두리째 재탄생 시켰다. 


작은 TV에서 흘러나오는 그 영화의 O.S.T가

마치 향기처럼 온 집안을 채웠다. 


그날 밤, 나는 심장이 두근거려 잠에 들지 못했다. 

'타이타닉'이었다. 

가라앉는 배와 함께 바닷속에 봉인된 둘의 사랑. 이뤄지지 않는 사랑. 



- 그날 새벽, 

'배'를 타는 건 위험한 일이야. 바다는 거대하고 두려운 곳이야' 라는 문장과, 

'나는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하지 않을 꺼야' 라는 문장을 무의식의 책장에 새겨 넣었다.

하지만.. 내가 거부했던 것들은 모두 나에게 끌려 들어왔다. 



그리고 

13살까지 ‘판사’라고 장래희망을 써냈던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사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던 공포의 존재..

애석하게도 아버지라는 대상을 악의 축으로 삼은 채

그를 벌하고 싶었던 어린 마음의 간절한 욕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14살. 12월 겨울 새벽. 


내 꿈은 ‘영화’가 되었다. 

‘영화 감독이 될 꺼야. 나도 누군가의 꿈을 바꿀 수 있는 이야기를 쓸 거야.’ 

‘타이타닉’처럼 수 많은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새겨지는 이야기를 할 거야. 


그 꿈은 여전히 현재 도약,  미래 진행중이다. 








이로부터 20년 후 –



<시 1.>

도항선’

 

도항선 타고 가다가

 

갈라지는 물결이 신기하다

 

과거를 즈려 밟고 가는 것 같아

 

갈매기를 봤다.

 

나도 떠날 수 있나 해서 

 

  _  ‘남바다’

 



2023년의 나는 이 섬에 살며 수시로 배를 탄다. 

그리고 2023년의 나는 매일 인적이 드문 새벽바다에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현재

평범한 맥락대로 이뤄지기는 힘든 그런 사랑을 시작해버렸다. 




5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는 그 시간이 지나고 

혹시 내가 이 섬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 사랑의 엔딩을 쓸 수 있을까? 

'이 사랑은 끝내 이뤄지기 힘들까..?' 라는 어두운 마음에 갇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벽바다에 들어갔던 어떤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존재만으로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 순간. 

새벽바다는 나에게 투명한 파도의 물결을 일으켰다. 



"네가 꿈꾸는 불행은 가짜야. 

네 마음에 그려진 지옥도를 끄집어내. 

가짜 꿈에서 깨어나!

진짜 꿈을 찾아." 


- 새벽바다에서 나온 후 나는 아침 일기를 쎴다. 



[오늘은  흰 파도 거품으로 빨래 되어진 날. 

해묵은 찌든 때가 벗겨진 날.] 






나는 5년 후가 되었든 50년 후가 되었든 

이 섬을 떠나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바다는 내게 거대한 두려움이 아니었고, 

내 사랑은 앞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 아니다. 

그를 기다리며 

가슴 속에 쌓아 둔 묵직했던 문장들을 봉인 해제시켰다. 

 




                                 그리움

 

텅 비었다 

생각했는데

 

착각
 착각이었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가득 차 있었다.
 
 
그리움으로.
 
 

하루가 온통
 그리움으로
 채워지면
 
 나의 시계는
 1분이
 하루 같아.
 
 째깍.
 째깍.
 
 1초

1초에 당신 얼굴이 새겨지고

 

1

당신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을 새기는데
 1
초면 충분해 
 
 

그리움의 시간을 살고 나면
 
 

나는

백 년은 더 산 것 같아

 

마음속 거울엔
 백발 할머니가 있어

                                                                _남바다 

 







철썩철썩 파도가 거품을 일으킨다.

새벽바다의 거대한 빨래가 끝나고 해변으로 나왔다. 




시원하고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칵테일 속 얼음처럼 나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사랑의 기적이 시작된 동시에 

내 마음 깊은 곳 어딘 가에 

봉인해 두었던 지옥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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