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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12. 2021

우리에겐 특별하지만 남에겐 평범한

순댓국이이어준 인연

 이렇게 가끔씩 꼼군과 감정의 다툼이 있는 날이면 우리는 둘 다 각자의 동굴로 들어간다. 서로 말없이 다른 방향을 보며 이 시간이 어서 흘러가주길 바란다. 나는 이럴 때면 무작정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걷는다. 운전을 할 수도 있지만 생각으로 가득한 복잡한 머릿속으로 몰려드는 온몸의 피를 그렇게라도 해서 다리로 분산시키면 조금은 수월하게 생각을 단순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무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발걸음 닫는 대로 무작정 걸었다. 아침저녁으로 온도차가 큰 요즘 한낮에는 온도차를 가늠하지 못해 혹시나 해서 걸치고 나온 봄 점퍼를 벗어 버려야 할 만큼 덥다. 점퍼를 벗고 팔을 걷어 부치고 마음 가는 대로 참을 걷다 보니 이 와중에도 배꼽시계가 울려댄다. 나 지금 되게 심각한데 얘는 그런 사정은 봐주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됐으니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먹긴 먹어야겠는데 오랜 유학생활과 지방생활로 혼밥이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아무 걸로나 대충 때우고 싶진 않다.

 그러 내 눈에 순댓국 집이 들어왔다. '28도에 육박하는 이 더운 날 순댓국?' 폼나게 멋진 브런치 카페에 가서 보기에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점심을 을까 생각했던 나는, 최애 음식을 파는 가게 앞에 더운 날씨도 괘념치 않고 바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난 순댓국을 엄마에게 배웠다. 술도 아닌 음식을 배웠다고 표현한 건 순댓국을 먹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순대를 물에 넣어 먹는다는 콘셉트는 호불호를 자아내기 십상이니 하는 말이다. 나 스무 살이 넘어서야 엄마와 길을 가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한 번만 먹어 보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한 스푼을 떠먹고선 바로 순댓국과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뒤늦게 알아버린 그 감칠맛에 한참 빠져있을 무렵 꼼군을 처음 만났다. 처음 둘이서만 만난 날, 그는 내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물었고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순댓국이라고 답했다. 정말이냐며 놀라면서도 미심쩍은 얼굴로 날 쳐다보던 그는 사실 자기도 순댓국을 제일 좋아한다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함께 먹은 첫 순댓국에 코를 박고 흡입하는 날 보며 '이 여자가 거짓말쟁이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순댓국이 이어준 인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 우리는 그렇게 연애기간 내내 맛난 순댓국집을 찾아다녔다. 여기저기 순댓국집을 다니며 맛을 품평하고 둘 다 마음에 드는 집이 생기면 단골이 되어 수시로 드나들었다.


 우리에겐 그만큼 특별하지만 남에겐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음식을 홀로 대하고 있자니 지난 10년 동안 그와 마주 앉아 맛있게 순댓국을 먹었던 모든 순간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나는 손도 대지 못하는 매운 청양고추를 맛있게 베어 먹으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그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한데 오늘은 이 매운 아이를 아무도 먹을 사람이 없어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그 기억들과 함께 잔뜩 토라져있던 내 맘도 말랑해져 온다. 딱히 무엇이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사소한 일들에 가시를 잔뜩 돋우고 성낼 준비를 하던 내 마음이, 익숙하면서도 매번 감동을 주는 맛난 국물 한 스푼에, 그 와의 기억 한 조각에, 녹아내린다.

 오랜 시간밥을 함께 먹으며 쌓아 올린 우리의 시간과 추억에 비하니 오늘의 작은 어긋남은 아주 보잘것없는 해프닝이 되어 버렸다.


 다음엔 이 집에 꼼군과 같이 와야겠다며 식당을 나서는 내 발걸음이 가볍다.




 -에필로그-


집에 돌아와 내가 어디 갔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슬쩍 말을 거니 꼼군 왈

 "뭘 궁금해~ 또 어디 가서 순댓국이나 먹고 왔겠지~"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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