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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13. 2021

선한 영향력

타인이 내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

 나의 스무 살을 돌아보면 그 시기를 정의하는 단어는 '불안'이었다. 허나 스무 살의 불안은 그 안에 가능성이라는 단어도 품고 있다. 삶이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지만 그만큼 커다란 가능성을 내포한 삶을 산다는 건 양날의 검과 같았다.


 나이를 먹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이제 내 인생의 윤곽이 드러나며 마음 붙일 곳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윤곽은 내 인생이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를 정의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변화를 거치는 것이 나이를 먹음과 함께 찾아오는 당연한 과정일 텐데 내가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한계가 드러남으로 인해 반대급부로 사라지거나 최소 줄어들었어야 할 불안은 그 형태를 바꾼 채로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20대의 불안은 인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나에게 최선일까를 놓고 정답을 알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된 혼란이었다. 내가 하는 선택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갈 인생선택받지 못한 삶에 대한 기회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몸부림 말이다. 허나 지금의 내게 불안은 쌓아온 것들을 지킬 수 있겠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결국 그 모습만 바뀌었을 뿐 세월이 불안을 없애 주진 못했다. 릴 때는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적어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연륜을 갖고 있을 줄 알았다. 불혹이란 말의 뜻이 그런 의미가 아니던가. 떤 의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허나 그런 용어의 정의에 기대어 마음을 추스리기엔 현재의 내 삶은 지속적으로 큰 변화의 소용돌이를 지나는 중이다. 정신을 똑바로 붙들고 있어야 그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잃고 넘어지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이 갈피를 못 잡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라는 물음이 떠오를 때면 생각나는 얼굴. 이제는 만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 얼굴도 가물가물하건만 10여 년 전 갓 일을 시작했던 내게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분이다.


 우리는 일을 하다 만났다. 당시 한 정부 부처의 사무관이던 그분은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차분한 표정을 지닌 분이었다. 당시 곧 개최될 장관회의를 준비하며 오랜 기간 그 분과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작은 체구 앳되 보이는 얼굴과 달리 카리스마가 넘쳤던 그분은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 지위를 뽐내거나 으스대지도 않았고 나이가 많은 주무관들에게도 깍듯한 그 분과 일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그렇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가끔 찾아가 뵈면 꼭 밥을 사주셨다. 점심시간을 1분도 넘기지 않고 사무실로 복귀하려 종종걸음으로 돌아가시는 그분을 보며 공무원으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참 괜찮은 분을 만났구나 라며 내심 기뻤다. 그러나 그분을 내 롤모델로 삼은 건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 사무관님에게는 선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곧은 의지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정책이 실행되자 그녀는 미련 없이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자신이 지지하고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는 기부와 참여를 통해 행동하고자 했고 현재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며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려고 노력했다. 그분을 보며 나 자신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반성 하기도 했었다.


 그 후로 강산이 한 번은 변할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1년에 한두 번씩 그 분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다. 이제 서기관이 된 그분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해나가고 계신다. 얼마 전 뒤늦게 이룬 화목한 가정을 통해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인생도 훌륭히 개척해 나가고 있을 것이 눈에 선하다.


 나도 그녀처럼 올바른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꾸만 멈춰 서서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밖을 보며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보다는 내 안에 집중하며 살 때가 더 많지만, 옳다고 믿는 것이 있으면 그 믿음에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하며 살았고 비록 그로 인해 나에게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비겁하게 눈 감고 등을 돌리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닿아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되면 '내게 선한 영향을 끼쳐줘서 참 감사하다'라고, 그리고 많이 보고 싶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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