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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11. 2021

사유하고 불안정한 엄마

나 답게 엄마 되기

 요즘 어디를 봐도 70대 여배우의 이야기가 도배를 하고 있다. 배우 윤여정. 그녀의 인생을 조명한 수많은 프로그램들 덕에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언론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그녀의 오스카 수상 소감 중 나에겐 두 아들에 대한 멘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두 아들이 저를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외국인들은 그 멘트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그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주어진 역할을 해낼 수밖에 없던 싱글맘의 삶. 언젠가 인터뷰에서 그녀가 연기를 가장 잘할 수 있을 때가 언제냐는 리포터의 물음에 출연료가 입금되는 순간이라고 답한 그녀의 담담한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이렇게 화려한 시상식에 나서면서도 자신은 화려하게 돋보이고 싶지 않다고 한 말을 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배우이기 이전에 최선을 다해 생업에 뛰어든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삶을 바친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본 특별함은 무얼까?  

'사유하고 불안정한 엄마

그녀에겐 엄마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푸근함과 안정감과는 조금 결이 다른, 엄마이기 전에 한 여자로, 한 사회인으로 불안과 걱정, 연민을 함께 지닌 여성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더 진짜 같고 그래서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의 그녀가 있다. 현실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과 영화 '미나리'에서 보여준 틀을 깨는 할머니의 모습이 만나 어쩌면 더 큰 시너지를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그리는 엄마를 표현한 어느 미디어 평론가의 저 말이 나에게 와 닿았다. 모든 엄마들이 획일된 형용사 몇 개로 표현될 수는 없는 법. 난 사유하고 불안정한 엄마로 묘사되는, 그녀가 보여주는 엄마가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엄마라고 해서 엄마를 이루는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님을 그녀의 수상소감으로 만천하에 증명된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엄마도 불안할 수 있음을. 엄마도 두려울 수 있음을. 엄마도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고 엄마도 울고 싶을 때가 있음을 드러내 준 그녀에게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약해지고 한 없이 움츠려들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엄마는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강함 뒤에 얼마나 많은 눈물과 버팀의 다짐이 있는지 보려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강한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엄마가 된 지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부족함이 더 많은 나라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3개월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다. 매일을 비몽사몽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 시간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의 한계를 시험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새벽에 깨어있는 아기를 들쳐 엎고 잠이 든 식구들이 깰세라 아기를 얼르고 달래고 유모차에 태워서 거실을 오가며 제발 잠이 들길 간절히 바라며 인내하고 있던 때였다. 여간해서는 잠이 들리 없는 아기는 움직임이 멈추면 바로 찡얼댔고 급기야 난 나도 모르게 안고 있던 아기를 거칠게 침대에 내려놓았다. 판단력이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내 머릿속에선 '아기가 나 힘들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아 더 이상은 못 참아!'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자리 잡았고 갑자기 침대에 내려진 아기는 당연히 더 크게 울었어야 했는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걸까. 그 어린 생명이 갑자기 뚝 울음을 그치고 조용해졌다. 그러자 비로소 정신이 들며 죄책감이 밀려왔다. 다시 아기를 들쳐 엎고 미안하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엉엉 울며 밤을 새웠던 기억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내가 겪어보니 아기를 낳는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 10년이 된 지금도 난 여전히 '엄마'를 완성해 가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 '윤여정'이 보여준 엄마를 보며 엄마가 불안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틀에 박힌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도 여전히 '엄마' 일 수 있음을 알게 되어 안심이 된다. 나도 그렇게 나 답게 엄마가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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