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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07. 2021

어느 한 생명도 이 세상에 쉽게 오지 않는다.

멜빵이의 탄생

 아이 하루가 다르게 성큼성큼 자라나는데 외려 할머니는 자꾸만 시들어간다. 이제 곧 칠순을 앞둔 엄마는 요즘 들어 시름시름 아플 때가 많아지셨다. 이가 머니의 사랑을 쪽쪽 다 빨아먹고 커버린 탓일까. 할머니가 늙어 가는 속도만큼 아이 키를 재어 표시해 놓은 벽에는 자꾸만 새로운 줄이 그어진다.


 이렇게 하나의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꽃 피우고 시들고 떨어지며 완성이 되어 간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제외하고 생명의 한 사이클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건 식물이나 동물을 통해서 인 것 같다.


 나도 요즘 뒤늦게 눈을 뜬 나무와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며 가만히 한 자리에 서 있는 이 생명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강인하고 활발한 생명력을 느끼는 중이다.


 아이도 요즘 콩을 하나 심어 놓곤 '멜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멜빵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간다. 아이 주먹보다 조금 큰 저 작은 화분에서 과연 생명이 자랄 수 있을까 의심 아이가 매일 아침 멜빵이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심드렁하게 꾸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언제나처럼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에 내어 놓은 멜빵이에게 달려간 아이가 "엄마!! 엄마!! 와!!!" 소리를 지른다. 놀라서 가보니 멜빵이가 자신을 덮고 있던 무거운 흙을 밀어내며 빼꼼 인사를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저 작은 화분 안에서 밤새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건강하고 튼튼해 보이는 연두색의 파란 싹을 당당히 피워낸 멜빵이를 보며 아이는 환호했다. 그 연약한 싹이 얼마나 힘이 세던지 덮고 있던 흙이 밀어 올려지다 못해 바닥에 투두둑 흩어져 있었다. 어제 아침에 이상하게 멜빵이 흙이 불룩 솟아 나와 있다며 분명 금방 싹이 날 거라고 흥분하던 아이 모습이 떠오른다.


 흙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드러낸 멜빵이를 보니 우리 아이가 태어나던 날이 생각이 났다. 밤새 진통을 겪으며 이가 나갈까 이를 악물 지도 못하고 그저 끙끙 앓으며 버티던 기억. 소리를 지를 기운도 없는데 드라마에선 어떻게 그렇게 힘들이 좋아 소리를 꽤꽥 질러대는 산모들만 가득했던 건지 속았다는 생각 며 하릴없이 이 고통의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와중에 아픔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건 무통주사도 아니고 꼼군의 애처로운 눈길도 아닌 의사 선생님의 밖의 한마디였다.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아이가 엄마보다 열 배는 더 힘들어요. 그러니 조금만 참으세요."


 어른인  생전 처음 겪 보는 심한 고통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인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이 작은 생명체는 이 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며 뱃속에서 세상 으로 끄집어내어 지기만을 기다린다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 아픔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큰 고통을 버티고 견뎌내 건강하게 내 품으로 와준 아이가 고마워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참을 울었다. 그때 느꼈던 생명의 신비와 감동은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처럼 느 한 생명도 이 세상에 허투루 오지 않는다. 다들 저마다 세상에 태어나보겠다며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했기에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 작은 콩 하나도 싹을 띄우기 위해 일주일을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자기 몸 보다 몇 배는 무거 흙을 들어 올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아이 저 작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자신이 태어나서 건강한 어른이 될 때까지 옆에서 매일매일 물을 주사랑으로 듬뿍 적셔준 할머니와 부모의 사랑에 감사할 줄도 안다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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