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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17. 2021

나의 심리적 안전 기지

언제든 옆에 있어줄게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 산 뒤로 넘어간 해가 아직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빛이 남아 있는 이때,  안에 불을 다 끄면 한낮에는 보이지 않던 바깥 풍경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파란 하늘 위에 흘러가는 핑크빛 노을과 삼삼오오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


 이 때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티브이를 시청하는 제삼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왠지 이 캄캄한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내 존재를 들키지 않을 테니 안전한 곳에 숨어 있다는 착각. 어릴 때 누구나 옷장이나 다락방 혹은 이불로 텐트를 쳐 놓고 그 안에 숨어 있던 기억이 있을 거다. 나도 이불장에 숨어들어 한참을 숨죽이다 잠이 들어 버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폐쇄공포로 시켜도 못 할 텐데... 그 당시 떠오르는 기억들은 포근함과 아늑함, 그리고 엄마를 따돌리며 신이 난 스 같은 감정들이다.


 그러다 이제 해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해져 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불을 밝힌다. 다시 인생의 주인공이 무대 위에 나타날 시간이다. 어두운 바깥에서 훤히 들여다 보일 것이 신경 쓰여 부랴부랴 커튼을 치면 다시 밖과 단절되어 나만 보이는 내가 있다. 이때야 비로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신만의 '안전 기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딘가 기댈 곳이 있고 내 마음에 평화를 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안전 기지'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그 역할을 해야 할 테고 부부는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어야 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에게서 기대하던 그 역할을 친구에게 혹은 연인에게로 옮겨간다.


 되돌아보면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부모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천성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탓이 컸다. 그래서 항상 걱정이 많았고 불안했고 긴장하면 숨이 막힐 듯 조여드는 긴장감에 배가 아팠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항상 친구들을 잃을까 두려웠고 나의 본모습이 아닌 친구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었다.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살다 보면 금세 지쳤고 힘이 들었다.

 정이 많다 보니 부모님이 살짝 다투시기만 해도 난 부모님이 이혼이라도 할까 봐 겁이 방 안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고 그런 나를 괜찮다며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안심시킨 건 다름 아닌 한 살 차이의 여동생이었다. 린 나이엔 나보다 언니 같던 씩씩한 동생이 의지가 됐고 좀 더  자란 후엔 나의 심리적 안전 기지는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멍하니 혼자 한강에 가서 컵라면을 하나 먹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출렁이는 강물과 눈빛 교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좀 편해졌다. 아마도 그 시절 나는 사춘기에 발산해야 할 질풍노도를 강물에 떠내려 보내며 심리적 불안을 이겨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우리 부모님은 나의 사춘기는 아주 평범했고 큰 일 없이 지나갔다고 기억하고 계다.


 그러나 내 가정이 생긴 지금의 내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은 완벽한 안전 기지가 되어 주지 못한다. 혼자 있으면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이젠 꼼군과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나의 완벽한 안전 기지다. 내가 돌보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킨다.

그러고 보면 가정이 생긴다는 건 평생 옮기지 않아도 되는 영구적인 나의 안전 기지가 생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듯하다. 이 영구적인 안전 기지는 날 심리적으로 더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내 기질을 많이 닮은 우리 아이에게 나는 튼튼한 안전 기지가 되어 주고 있는 걸까. 생각이 많고 예민한 이 아이가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저 혼자 끙끙대며,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 모를 질풍노도의 시기를 버텨내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든 필요할 때 손을 내밀면 그곳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준비를 하며 아이 곁에 있어주어야겠다. 아이가 더 자라서 우리가 맡고 있던 안전 기지를 그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어 할 때 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다시기가 너무 빨리 오지 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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