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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25. 2021

내게 남은 봄은 몇 번일까.

가장 어려운 미션

 10년 만에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우리 아이 돌잔치 때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니 그 후로 강산이 변할 시간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십 대 초반, 피아노 학원에서 알바를 하며 만난 언니와는 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금세 가까워졌다. 긍정적인 성격과 푸근한 성품에  친동생처럼 챙겨줬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내게 고마운 기억이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런던은 비도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추울 거라며 날 데리고 가서 예쁜 털모자와 양말을 사줬던 언니. 17년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히 그 모자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힘들 때면 언니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다. 얼굴을 못 본지는 오래여도 꼭 어제 만났던 것처럼 내 속 얘기를 다 받아주 언니 덕에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


 차로 겨우 한 시간이면 닿을 거리인데... 기까지 오기가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 언니도 오랜만에 날 볼 생각에 마음이 들뜨는지 채팅 창에 하트를 한 아름 그려 넣고선 우리 아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돌 이후로는 본 적 없는 내 딸이 궁금하다며 "지오는 뭘 좋아하니? 화장품 같은 거 좋아하니?" 라며 묻는다. 아직 어려서 장난감 좋아할 나이라고 아이 사진을 보내주니 "아직 애기구나!" 라며 웃는다.


 10년 간 쌓인 수다 보따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언니네 집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하고 주책맞게 눈물이 나올 것만도 같아 당황스럽다.




 20년 전, 갓 출산한  아기 엄마였던 언니는 여전히 그때 그 부끄럼 많던 새댁 같다. 생기가 넘치는 눈망울과 뽀얀 피부, 예쁜 눈웃음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자아낸다.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시원시원한 말투도 그대로다. 그에 더해 세월 덧입혀준 삶의 지혜로 하는 말마다 전부 주옥같다.


"네가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 네게 남은 봄은 겨우 몇십 번이야. 그중에서도 중학생이 되기 전, 아이가 정말 널 필요로 할 어린 나이에 함께 맞을 수 있는 봄은 고작 한 두 번 밖에 남지 않았어. 인생 길게 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수 있을 때 선을 다해 아이 옆에 있어줘"


 10여 년 만에 처음 갖게 된 휴식의 시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내게 언니가 던진 쓴소리다. 니가 얘기하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스무 살 때부터 날 보아온 언니가 느끼기에도 이번 휴직은 아이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시기 것 같다.


 좀처럼 남의 얘기에 마음을 고쳐 먹은 적이 없는 나지만 언니의 묵직한 조언에 지하게 나를 돌아보 된다. 족과 함께 할 땐 온전히 가족 안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금 난 어떤가... 휴직이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밖으로만 쏟으며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모습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몸은 아이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출근 중인 나는 지금껏 아이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사랑은 희생이 수반될 때 그 진위를 가려낼 수 있다. 가 사랑의 증거로 들이밀 수 있는 것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10년간 묵혀뒀던 수다 보따리는 5시간을 풀어내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아 결국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헤어짐이 아쉬워 몇 번을 돌아보고 멈춰 서서 손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와 나눴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제 거의 휴직 기간의 절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을 되돌아본다.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를 했냐고 닦달하고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아이 행동을 볼 때마다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기준에 맞춰 아이를 바꾸려 꾸짖을 때가 더 많다. 진짜로 아이 옆에 있어준다는 건 물리적으로 옆에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구나.


 요즘 조금씩 몸에 일어나는 변화와 이성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점점 그 난이도가 높아지는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심리적, 신체적으로 부담을 받고 있을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걸까.


내가 여태껏 해 왔던 일 중 가장 해내기 힘든 미션이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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