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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y 26. 2021

이번 생엔 어른이 되긴 틀렸다.

내 무의식과의 조우는 언제쯤?

 쓴술이 달아지면 어른이 된다던데 난 언제 어른이 되려나.


 마는 술 근처에만 가도 머리가 아프다며 드러누우시고 아빠는 사업하시느라 못 드시는 술을 억지로 드시다가 젊은 시절  절반 정도 잘라내셨다. 자연스레 동생과 나도 술이 몸에 받지 않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허나 억울한 건, 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술을 엄청 잘 먹게 생겼다고 한다는 거다. 을 잘 먹게 생겼다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그저 술자리에서 내가 일부러 술을 안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외려 술을 한 잔 마셔야 한다. 불타는 고구마가 된 내 얼굴과 술 한잔에 취기가 잔뜩 오른 날 보면 그제야 사람들은 나를 향한 의심의 끈을 풀어놓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입사한 회사에선 낮에 점심먹으면서도 맥주 한 잔씩 걸치는 게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다. 지방 특유의 여유로움과 직원들끼리 형님 동생 하며 친근하게 지내는 곳. 그 덕에 술 마실 일이 많이 생겼다. 다행히도 억지로 술을 권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분위기를 보며 맞추는 척은 해야 했다. 렇게 분위기를 맞추려 받아 놓은 술을 버리느라 테이블 아래에는 항상 커다란 대접이 자리 잡았고 가끔씩 그것이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귀한 술을 버렸다 엄청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술자리를 안 가면 되지 않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술자리 자체를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다닐 때도 항상 술 먹고 거하게 취해 엎어져 자는 친구, 하던 말 또 하며 무한반복으로 말싸움을 하는 친구, 심지어 술에 취해 도로로 뛰쳐나가 뜀박질을 하는 친구들까지 챙기느라 바빴다. 그렇게 정신없는 친구들이 어디 뭘 흘린 건 없는지 빠짐없이 챙겨서 집까지 데려다주면 술을 안 마셔도 정신이 몽롱하고 온 몸이 뻐근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내가 술을 못 해도 술자리에 꼭 날 끼워곤 했다.


 술자리에 가면 맛난 안주를 먹으며 사람들이 긴장을 풀어놓고 얘기하는 걸 보는  쏠쏠하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내가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혼자 멀쩡한 정신으로 취해가는 자신을 보는 것이 왠지 부당하다나? 물론 긴장만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술만 먹으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다. 평소엔 세상에 그런 순둥이가 없는데 술만 먹으면 거리에 나가 무엇이든 부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점잖기 이를 데 없는 친구가 술만 먹으면 이 세상 제일의 호사가가 되고 노래방에 마이크를 내려놓을 줄 모른다.


 '사람들은 잠재의식 속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걸까?'


 한 번도 술을 달게 느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직 정신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고 무의식 속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만나본 적이 없다. 람들이 무의식 속의 숨겨진 자아를 찾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반대로 의식 있는 현재의 자신을 잊고 싶어서 술의 힘을 빌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쓰디쓴 알코올 덩어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술이라는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이 분명다.

그러나 한두 모금으로 정리되는 나의 주량으로 그 매력을 파악하기에는 택도 없으니 결국 난 이번 생엔 어른이 되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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