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May 28. 2021

나이 듦의 증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람들

시간이 생기니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자주 생각난다. 사느라 바빠 자주 연락하지 못했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 이런 게 바로 나이가 들었다는 징조라는데 내게도 어김없이 그 순간이 찾아왔다.


항상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던 중학교 동창. 고맙게도 무슨 때가 되면 전화를 해선 생각날 때 안 하면 평생 못 할 것 같아 연락했다며 날 감동시키곤 하는 친구다.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내외분이 날 참 이뻐라 하셨었다. 큰 맘먹고 찾아뵙기로 했는데 방문 당일 하필 장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한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기다리셨을 텐데... 무슨 염치로 다시 연락을 드려야 할까.


처음 '아이 러브스쿨'이 생겼을 때 졸업한 초등학교  만든 게 나다. 재미 삼아 만든 그 모임이 커져 개최했던 1회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 고선 그다음부터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 후로 나 없이도 꾸준히 열린 동창회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 있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는 그 친구들도 못 본 지 너무 오래다.


고등학교 때 삼총사였던 친구들은 또 어떤가. 한 친구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느라 만나기 어렵다 해도 같은 경기도에 사는 친구는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데 각자 가정 꾸리랴 일하랴, 생일이나 명절이 아니고선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렇게 마음에 담아 둔 친구들과 그 시간들이 그리워 20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방문에도 기꺼이 동행해 준 친구그 시절 그 교정을 걸으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뜨문뜨문 떠오른다. 하얗게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과 해맑게 웃고 떠들던 모습이 바로 어제 같다. 비록 엄청나게 커 보이던 운동장은 생각보다 작았고 학교 건물은 세월과 함께 군데군데 낡아졌지만 그대로 그곳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참 고다. 수많은 우리들의 추억과 열정, 꿈, 우정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 가니 20년 전의 내가 품었던 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에 대한 부푼 기대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얼굴에 젖살이 남아있는 어리디 어린 후배들에게 90도 인사를 받으니 그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긴 세월의 진폭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다.


무엇을 기대하고 이 곳에 오고 싶었던 걸까.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곳에 있는 그 시절 내 모습이 오버랩되고 나는 지금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 있나 자꾸 점검하게 된다.


한참을 그곳에 머물며 예전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이 같은 추억여행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한 건 그 과거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함인 듯하다. 이전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나의 성장을 목도한 사람들. 현재의 내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전부 아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는 지금 현재의 내 모습과 사회적 지위, 경제적 형편에 따라서만 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제한 때문이다. 또한 말로 전하는 과거는 기억의 오류 혹은  의도된 과장 또는 축소로 인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게 포장된 과거를 안고 새로운 이를 만나면 진실된 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그러니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일 수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매주, 오래 보지 못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추억여행을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끊어져 있던 다리를 복구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던 기억을 현재로 이어 붙이며 그들과 함께 천천히, 편안히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