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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01. 2021

잡초가 되지 않으려면...

팔요한 곳에서 쓰임받는 법

 한여름 저리 가라 할 만큼 뜨거운 햇볕 아래에 조금만 있어도 살이 빨갛게 타오른다. 제주는 오늘 24도. 아직은 해만 피하면 밖에 있을 만 한데 이제 겨우 5월 말이 라는걸 감안하면 올해 여름의 더위가 어느 정도일지 짐다.


 육지에선 아침 8시에도 겨우 일어났는데 여기선 7시 전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암막커튼도 뚫을 듯 차창 너머로 비쳐 드는 강렬한 햇살 때문이다.

 이곳에 있으면 항상 시간이 아깝다. 단 며칠이라는 시간의 제약이 이곳에서의 시간을 육지에서보다 더 소중하게 느끼게끔 만든다. 정성 들여 일정을 짜고 아침 점심 저녁 세끼에 갈 식당들을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나면 느덧 하루가 꽉 찬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새 쑥 자란 잡초들을 뽑는데 참새 몇 마리가 잔디밭으로 날아와 풀 속에 숨은 벌레들을 잡아먹는다. 얼마나 맛나게 먹는지 내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른다. 한참을 짹짹거리며 동네방네 친구들을 다 불러들이다 보니 어느새 참새 여덟 마리가 우리 집에서 포식을 하고 있다.


 정원의 몇 안 되는 나무들은 지난주 충분히 내린 비와 며칠 째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로 전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빛에 반사되는 나뭇잎들이 거울처럼 반짝이니 여름은 식물에게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계절인 것 같다.


 아침나절의 여유를 만끽하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시원한 밀면이 생각나 유명 식당으로 향했다.

산방식당 밀면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물로 2개 줍서~" 로컬처럼 얘기하곤 아는 맛이어서 더 먹고 싶은 밀면을 기다린다.

 이상하게도 제주에서 산 건 1년이 채 안되고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일인데 그때부터 알고 지낸 제주 지인들을 만나면 자꾸만 제주 사투리가 나온다. 정감 있고 친근하게 굴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나도 모르게 고향에 온 것처럼 제주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오면 그 어설픈 말투에 지인들도 웃고 어색함에 민망해진 나도 웃는다.


 시원한 밀면으로 더위를 좀 이겨낸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잡초를 마저 뽑는다. 아무리 챙이 큰 모자를 눌러써도 태양열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고 잡초 제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전에는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 기쁜 마음으로 풀을 헤집고 다녔었는데 이젠 잔디 외에 모든 풀은 잡초다. 내 집 마당이 아니었다면 이쁘다며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를 샛노란 민들레꽃도 이제 내겐 최고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난이도 최상의 깊은 뿌리를 가진 잡초일 뿐이다.

 

 그러다 문득, 이들도 제 값어치를 알아주는 곳에, 필요한 곳에 제대로 피었다면 이쁨 받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우리 집 마당에 핀 죄로 내 호미질을 감당하고 있구나란 생각에 미안해진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자신을 제대로 인정해주고 맘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곳 혹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이라면 우리 집 마당의 잡초와 다를 바 없 취급당하며 살기 십상이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불필요한 잡초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부단히 자신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급한 마음에 타협을 해버린 건 아닌지, 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오로지 새소리만 정적을 깨는 평화로운 이 곳에서 몇 시간 동안 홀로 잡초와 씨름을 하고 있자니 가 잡초를 뽑는 건지 잡초가 나를 가르치자는 건지 애매한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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