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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19. 2021

중간점검

잘 못 쉬고 있습니다만...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힘들 때면 지금을 견뎌낸 미래의 나를 상상하곤 한다. 힘든 시간이든 행복한 시간이든 언제나 멈추지 않고 흐르기에 미래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시간 본질은 항상 오늘을 견낼 수 있는 위로를 안겨 었다.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못 구해 방세가 없어 쩔쩔맬 때도 일을 하는 몇 달 후의 나를 상상하며 견디어 냈고, 학교를 다니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학업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이나 병행할 때도 멋지게 졸업한 나를 상상하며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스트레스로 얼굴이 마비될 정도로 괴롭히던 상사와 일을 하면서도 좋은 곳으로 이직하며 멋지게 사표를 던질 날을 생각하면 그 고통이 좀 덜해졌고, 아이를 갖자마자 생긴 심한 입덧으로 물만 먹어도 구역질이 나와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도 10개월 후 이 세상에 태어날 천사 같은 아기를 생각하이를 악물고 참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시간은 내게 항상 고난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올해 휴직이란 이름 아래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살게 되니 오늘은 내일을 맞기 위한 마중물이 아닌, 남아 있는 시간을 잡아먹는 악당과도 같다. 하루하루 달력에 엑스표를 그어 가며 오늘이 과거가 되어 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어떤 날은 끔찍하리만큼 두려울 때가 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아직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내일은 자꾸 오늘이 되고 오늘은 자꾸 어제가 되어간다. 리고 시간에도 중력이 있나 보다. 자꾸만 가속 붙는다. 그 속도를 거스르지 않고 익숙한 대로 관성에 의지해서 살면 결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내가 한심할 뿐이다.


 이제 마음속 마지노선이었던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다. 지난 6개월 동안 열심히 주어진 공부를 해냈고 그렇게도 원하던 운동을 시작했으며 꼬박꼬박 일주일에 3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나름 바지런하게 살았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해낸 일 보다 아직 하지 못한 일에 집착하며 사는 삶이 익숙해져 버린 걸까. 24시간이 모자라다고 느껴질수록 시간의 흐름은 더 빨라져만 간다.


 6개월 전 휴직계를 내며 세운 목표가 있었다. 제대로 쉬는 법을 아는 편안한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 중간 점검을 하자면 현재로선 낙제를 받을 모양새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본 한 웹툰 작가가 10년 동안 연재하던 만화를 퇴고한 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허무한 표정을 짓던 것이 떠오른다. 그의 감정이 무언지 난 너무나도 정확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기에 공부를 선택했고 여유롭게 즐겨야 할 책을 경쟁하듯 의무감 잔뜩 품고 읽었으며 폼나는 걸 해보자며 호기롭게 운동도 시작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시간을 갖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애초에 1년을 어떻게 보내겠다며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다. 무얼 원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알게 된 건, 잘 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어떤 의무감이나 속박 없이 즐길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행복한 엔도르핀이 내 몸속에서 마구 솟구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것을 깨닫는데 반년이 걸렸으니 나머지 반년은 그래서 뭘 하면 진짜 즐거울 수 있을지를 찾데 써버리게 될 것 같은 불한 예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렇게라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내 인생에서 이번 휴직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는 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가 걸린다 해도 결코 허투루 보낸 시간은 아 거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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