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정말 틈틈이 글을 쓴다. 밥 먹다가도 생각나는 문구가 있으면 적고 해변에 앉아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주시하다가도 잠깐 딴생각에 빠지면 영락없이 문장 하나가 떠올라 서둘러 앱을 켠다.
아이도 그 습관을 보고 배웠는지 생애 처음으로 갖게 된 스마트폰을 메모장으로 활용하는 중이다. 아주 아기 때부터 따지자면 열 번은 더 바뀌었을 아이의 꿈이 현재는 작가인 까닭이다. 얼마 전엔 소설을 썼다며 핸드폰 메모장에 빼곡히 적은 소설을 몇 편 보여준다. 겁이 많아 무서운 건 잘 보지 못하는 아이가 희한하게도 소설은 모두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아직은 작품이라고 보기엔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나름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아이의 글이 대견하다.
난 어릴 때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난 책을 읽는 사람이지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래도 책은 참 좋아했다. 처음 책에 빠진 건 탐정소설 덕분이었다.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과 같은 연재물에 흠뻑 빠졌었고 아가사 크리스티와 스티븐 킹,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그렇게 활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뒤부터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래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작가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운명 같은 필력이 없이는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아이의 꿈이 작가라니... 물론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는 잠깐 스쳐가는 정거장 같은 꿈일 수도 있지만 조그만 손가락으로 꼬물거리며 텍스트를 만들고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 기특하다.
나도 브런치에서만큼은 작가라 불린다. 어느 날은운 좋게 포털에 노출된 내 글을 본 지인이 연락을 해 왔다. 이제부터 작가님이라 부르겠다는 그의 말에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내 글을 자주 읽어 주시는 한 작가님이 자신의 글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책 한 권 없이 작가라 불리는 건 정당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듬어 오롯이 한 권에 정갈하게 담아낸 경험 없이 감히 그 명칭으로 불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보다 더 내 심장을 뛰게 했던 명칭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팀장님, 차장님, 사모님, 그 어떤 명칭도 이에 비할 수 없다. 날 행복하게 해 주는 명칭으로 불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계속 지치지 않고 글을 쓰는 것뿐이다. 이렇게 쉼 없이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 날 자신 있게 내 이름 석자 뒤에 그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무언가를 입력해 넣는 중이다. 등 너머로 흘낏 훔쳐본 화면에는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빼곡히 적어놓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내 눈길을 느낀 아이는 어느새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가리며 "비밀이야~"라고 한다.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단어들을 엮어 이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가 된다는 건 음계를 배열해서 곡을 만드는 음악가와 색을 조합해서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와 다를 바 없는 예술가다. 게다가 이야기는 느낌이 좋다거나 색감이 좋다거나 하는 주관적인 감각들 보다 논리, 구성, 전개, 재미 등 훨씬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이 있으니 마냥 예술성만 발휘해선 읽히는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어떤 이름으로 불리며 살고 싶은 걸까. 누군가 말했듯 '예술은 노동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위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여정을 오늘도 묵묵히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