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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07. 2021

가족의 친구

대를 이은 짝꿍

 제주에 함께 여름휴가를 온 친구 가족이 떠나는 날이다. 고요했던 우리 집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추억을 쌓아준 단짝 친구 가족. 스무 살에 만난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들이 꼭 우리처럼 쿵짝 잘 맞는 친구가 되는 것을 보는 과정은 참 흐뭇한 일이었다. 우리가 새벽이 다 되도록 와인잔을 기울이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으면 아이들은 방에서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워 속닥속닥 자신들만의 비밀 얘기에 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러다 피곤에 지쳐 곤히 잠든 아이들걷어차 낸 이불을 덮어주면,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든 이 귀염둥이들의 하룻밤이 깊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그 친구와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친구라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두 살이나 차이가 나는 언니다. 19살에 갓 입학해 아직 고등학생 테가 팍팍 나는 나와는 달리 재수를 한 언니는 염색을 한 펌 머리에 멋쟁이 빨간색 니트를 입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 인연을 알아본 걸까? 그 첫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히질 않는다. 그러나 우린 처음부터 단짝은 아니었다. 1학년이 거의 끝나갈 쯤이 되어서야 친해지기 시작했던 우리는 연극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언니가 연출했던 연극 작품에 내가 음악을 만들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나와는 달리 어떤 모임에서든 분위기를 주도하는 리더십이 참 보기 좋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둘은 닮은 구석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는 건 자신이 갖지 못한 장점을 서로에게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또 사업가로서 며느리로서 배울 점이 많은 언니를 항상 곁에 가까이 두고 싶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원만한 세월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대의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함께 하며 우리도 성장통을 겪었다. 업 후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던 한 대중음악 연구소에선 매일 얼굴을 보고 지루한 업무를 하다 서로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며 다퉜던 적도 있었다. 여태껏 가족 말고는 그런 식으로 나의 치부를 전부 드러내어 보여준 사람은 언니가 유일하다. 그런 일을 겪으면 다음 수순은 절교가 당연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언니는 날 포기하지 않았다. 비 온 뒤 단단하게 굳은 땅은 좀처럼 다시 파헤쳐지지 않았고 그 위에 계속 함께 해 온 세월을 꾹꾹 눌러 덮어 우정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릴 수 있었다.


 언니는 유학기간 동안 내 친동생도 한번 찾아오지 않았던 런던에 날 보러 오기도 했다. 그때는 학교 공부를 하며 일주일에 3-4일은 공항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피아노 과외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영국까지 온 언니를 혼자서 유럽여행을 하게 했던 그 당시의 내가 참 어이없다. 인생에 있어 다시없을 황금 같은 시간을 생활에 치여 아쉽게 흘려보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 미안하다. 그때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타국에서 열심히 산다며 오히려 나를 걱정하던 언니의 따스한 말 지금도 생생하다.


 내 친구의 아이가 내 아이의 친구가 되고, 친구의 남편이 내 남편과 친구가 되고, 그렇게 온 가족이 함께해서 즐거운 친구들이 된다는 건 아무에게나 올 수 있는 행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꼭 같지 않아도, 서로의 사는 형편이 똑같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거울 수 있는 배려가 있어 더 감사한 인연이다.


 몇 주만 지나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또 서울에서 만날 건데도 일주일을 자매처럼 붙어 놀며 정을 쌓았던 아이들은 잠깐의 헤어짐에도 대성통곡이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순수한 우정에 나도 약간 울컥한다. 그 감정기대어 좋은 시간을 선물해 준 언니에게 낯간지러워 평소에 하기 어려운 말을 용기 내어 건네본다.


"언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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