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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05. 2021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돈이 미워질 때...

 친오빠처럼 따르던 사람이 있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 교회에서 집사님과 학생으로 만난 우리는 나이 차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꽤 잘 붙어 다녔다. 나뿐만 아니라 내 동생도 참 이뻐라 해주셨던 그 집사님을 우리 자매 정말 잘 따다. 그 집사님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군대 가는 것까지 곁에서 지켜봤으니 정말 오래된 인연이다. 이는 교회에서 합창단을 함께 했고 워낙 작은 교회이다 보니 교인들이 서로를 잘 챙기는 분위기였던 덕분이. 당시 사업을 하셨던 그분도 내가 20대 초반 갈팡질팡 길을 잃고 헤맬 때 당신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해 주셨고 단순 사무업무를 도우며 받는 100만 원이 넘는 월급은 꽤 큰 수입이었다.

 

 내가 영국행을 결정하며 자연스레 소원해질 뻔하기도 했지만 유학기간 동안에도 자주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소사를 챙겼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 중국으로 진출하셨던 집사님을 만날 요량으로 내 졸업식에 참석하셨던 엄마와 함께 런던에서 상하이까지 아간 적도 있. 눈이 돌아가는 중국의 산해진미와 뼈 마디마디를 시원하게 해 주는 마사지까지 풀 코스로 대접을 받은 우리는 그때만 해도 그의 사업이 기울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후 몇 개월쯤 흘렀을까. 영국 생활을 접고 후 다시 만난 집사님은 딘가 모르게 달라져있었다. 항상 웃음이 넘치고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뭔가 풀이 죽어 보였다. 중국 사업을 접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있던 작은 사업체를 다시 시작하셨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고 그 말을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전적으로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단 연락이 왔다. 한 번도 그렇게 큰돈을 누구에게 빌려본 적도 빌려준 적도 없었기에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집사님이시니 기꺼이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몇 달 동안 꽤 높은 이자까지 주셔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내심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간 이어지던 이자는 얼마 안 가 끊겼고 그와 함께 집사님의 연락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연락하고 싶었지만 내 연락을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 나도 먼저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난 그 돈을 못 받는 것보다 집사님과 소원해지는 관계가 더 싫었다. 얼마나 좋은 분인데, 어떻게 쌓아온 인연인데... 이런 일로 서먹해지는 것이 한동안은 못 견디게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하릴없이  러갔다. 몇 년이 흘렀을까. 이젠 오히려 돈을 핑계로라도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카톡을 보낸 후 두 근 반 세근반 하며 기다리는데 참만에 온 회신엔 사정이 악화되어 지하철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양말을 팔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해오셨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덧붙이시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연락이 끊긴지도 7-8년쯤 되어간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은 하신지, 하시는 일은 좀 나아졌는지 묻고 싶은 것이 한 보따리인데 차마 연락을 하지는 못다. 돈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오랜 인연을 속절없이 갈라놓는 것일까... 이쯤 되면 사람이 미울 법도 하건만 는 그 긴 세월 쌓은 정을 단칼에 부숴버린 돈이 더 밉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건강히 잘 지내시길... 그 전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살고 있으시길 정말 진심으로 바는 마음이다. 20년을 넘게 쌓아온 정과 내가 받았던 그간의 호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내가 빌려드린 금액보다 심정적으로는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의 인연을 이렇게 밖에 이어가지 못한 씁쓸함을 나보다 더 크게 곱씹으며 괴로워하실 그분의 성정을 익히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전 잘 지내요. 언젠가 제게 다시 연락하실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때 또 봬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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