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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28. 2021

잔소리가 곧 사랑이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저녁으로 햄버거를 만들어 먹었다는 소리에 아빠는 또 잔소리를 하신다. 위가 아파 고생하며 밀가루를 못 먹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왜 또 밀가루를 먹었냐며 한 소리를 하신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시는 말씀인 걸 알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저런 말씀을 하시는걸까?' 라는 불만이다. 그러다 방금 전 아이한테 내가 했던 잔소리가 떠오른다.


 "밥 꼭꼭 씹어 먹어 안 그러면 또 체한다. 최소 30번은 씹어야 해"

"밥 먹을 때 똑바로 앉아서 먹어 그렇게 앉으면 소화가 안돼".


 급 반성이 된다. 내 잔소리를 듣는 아이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나도 아이를 위한다고 한 말이었는데 아이에게는 잔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부모의 마음 한구석에 늘 걱정거리로 남을 자식. 나도 우리 엄마 아빠의 자식이니 부모님의 평생의 최대 관심대상일 수 밖에 없음을 내 아이를 갖고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걱정이 많아지시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하던 잔소리를 다시 시작하셨다. '차 조심해라. 밤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나도 어느덧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가 되었는데도 앉으나 서나 내 걱정이시다. 그러고보니 죄송스러웠던 일 하나가 떠오른다. 신혼여행을 갔을 때 일이었다. 부모님으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본 인도양의 모리셔스, 잘 모르는 곳이니 아프리카라는 말만 기억을 하셨나보다. 도착 했을 때가 한참을 지났는데도 전화 한통이 없어 엄청 걱정을 하셨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 곳의 인터넷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전화가 잘 되지 않았고 평소에도 연락을 잘 하지 않던 나는 '나중에 하면되지' 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입장 바꿔 내 아이가 그랬다고 생각해보면 많이 서운했을 일이다.


 허나 이해한다고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걱정이 늘어 가는만큼 자식은 나름대로 살아온 인생의 길이가 늘어나 있다. 그만큼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살아온 세월은 길어졌고 더 이상은 부모의 걱정과 우려가 의도대로 전달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머리가 클 대로 큰 자식과 부모가 함께 살며 투닥거리지 않기는 힘든 노릇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산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결혼을 하고 별도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다시 부모님과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었다. 내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서 하게 된 합가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엔 여러가지로 얼굴 붉힐 일이 많았다. 그렇게 엄마랑 언성을 높이다 보면 아빠한테 혼이 나기도 하고 무엇이든 잔소리로 여겨져 결국 엄마한테 볼맨 소리를 했다가 엄마가 상처를 받기도 하셨다. 어디 그것 뿐인가. 책으로만 배운 초보 엄마의 클리셰는 어김없이 내게도 찾아와 엄마의 양육 방법은 틀렸다며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 엄마한테 못된 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이제는 어느 정도 서로를 배려하고 선을 지키며 잔소리를(?) 한다. 서로... 라고 얘기했지만 어쩌면 부모님이 전적으로 날 배려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휴직을 했어도 공부를 방패삼은 나 대신 여전히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 하는 우리 엄마. 엄마는 내년 분가를 앞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가족 살이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시려는 것 같다. 요즘은 잔소리 대신 미소를 띄우고 매끼마다 맛난 음식을 만드셔서 열심히 우리들을 먹이신다.


 이런게 부모 마음임을 이제 나는 안다... 더 주고 싶은 마음,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시간이 흘러 이 집에 우리 세가족만 남게 되면 집안 곳곳에 남아 있을 엄마 아빠의 근심과 걱정 서린 잔소리가,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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