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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26. 2021

내 인생의 사수

힘내세요!

 10년이 넘도록 회사 생활을 하며 내겐 2명의 사수가 있었다. 요즘엔 잘 쓰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냥 선배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 두 사람에겐 꼭 이 단어를 쓴다.


 그중 한 분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감사할 일이 많은 분이다. 영국에서 금방 귀국해 아직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던 때 갓 입사한 나를 가르쳐 주신, 나보다 열 살쯤 많으신 과장님이셨다. 스마트한 인상과 따스한 미소 그러나 자신의 일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프로였던 과장님께 일을 배우는 것이 참 즐거웠다.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고 언제나 긴장모드였다. 그러나 과장님은 내가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해도 크게 나무라는 법 없이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몸소 시범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사람을 중시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배려하려는 그 태도는 참 존경스러웠다.

 한 번은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는데 7시 45분에서야 잠에서 깨어 급하게 전화를 드린 일이 있었다. 그때에도 날 혼내는데 급급하지 않고 먼저 행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조치를 취해주셨다. 그날 이후로 내 별명은 7시 45분이 되었지만 다시는 늦잠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다. 리고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 사람들과 다양한 파트의 직원들을 배려하며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함께 협력하며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과장님께 일을 배운 건 단 6개월이었지만 렇게 따스한 리더십으로 내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뿐 만이 아니라 난 그분께 개인적으로도 감사한 일이 다. 회식 자리에 따라갔다가 식당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발등뼈가 몇 개 부러진 적이 있다. 별로 높지도 않은 계단을 딛다가 발목이 돌아갔는데 술에 취한 팀장은 상태를 보겠다며 뼈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내 다리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날 밤 아무 조치 없이 집으로 돌아온 난, 새벽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아파하다 퉁퉁 부은 다리로 아침에서야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꼼짝없이 오른발을 못 쓰게 었고 공교롭게도 그 당시 나는 차 없이 출퇴근하기 어려운 곳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과장님께선 망연자실해 있던 나의 어려움을 들으시곤 아침마다 우리 집에 들러 거의 한 달 동안 나출근시켜 주셨다. 차에 타면 아침을 못 먹었을 것 같아 준비했다며 내게 딸기우유와 빵을 건네시던 그 따스한 음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원래 출근하는 길이니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나 때문에 일찍 나와 먼 길을 돌아오셔야 하는 걸 내가 몰랐을 리 없었다.


 그 회사를 그만둔지도 벌써 6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는 여전히 무슨 때가 되면 안부를 묻고 서로의 회사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얼굴을 보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제는 가족끼리 만나 각자 아이들이 크면 사돈을 맺자는 얘기를 나눌 만큼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 그분이 요즘 아주 힘든 일을 겪고 계신다. 20년 가깝게 일해온 그곳에서 자신이 쌓아온 모든 일이 부정당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충격을 어떻게 이겨내고 계실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이전에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는 분이기에 무엇보다 그의 건강이 염려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포기하고 만다. 어떻게든 힘이 되어 드리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아프다. 물리적으로 옆에 있을 순 없지만 내가 항상 뒤에서 응원하고 있음을 알려드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이제껏 자신이 쌓아온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헛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고객들에게 얼마나 칭찬받는 직원이었는지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정받는 사람이었는지 직접 옆에서 목격한 증인이 여기에 있다고...


 며칠을 고민하다 어렵게 누른 버튼 너머로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 지나갈 거예요. 항상 응원합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 기운 내세요!"


 내가 힘들었을 때 받았던 큰 도움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누군가 자신을 믿고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서 빨리 이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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