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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24. 2021

몸도 마음도 바로 잡아 드립니다.

요가의 효과

 요가 클래스의 강사님은 칠순이 넘었음에도 엄청난 근력과 유연성으로 항상 나의 기를 팍팍 죽게 만드시는 분이다. 백발로 길게 기른 머리를 하나로 멋지게 묶으시고 엄청나게 어려운 동작들을 척척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해내실 때마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항상 씩씩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우스개 소리도 잘하셔서 수업받는 내내 클래스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강사님은 수업 중에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신다. 내가 잘 못해서 자세를 바로 잡으라고 부르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한데 그걸 감안해도 다른 분들에 비해 눈에 띄게 나에게 관심을 많이 쏟아 주신다. 아무래도 유일한 젊은 회원이라 소외감 느낄까 봐 신경을 써 주시는 것이지 싶어 감사하면서도 주목받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로서한편으로 약간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님이 어떻게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게 되었고 난 왠지 내가 왜 강사님께 신경쓰이는 회원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그분은 나처럼 키가 크고 머리가 긴 딸이 하나 있었. 그 예쁜 딸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차마 가슴에 묻지 못하고 2년여를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딸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커다란 병마가 찾아왔다. 삶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하나 남은 아들 위해 다시 살아야겠다 마음을 먹은 뒤 운동을 시작 지금까지 그 힘으로 살아오고 계신다는 스토리.


 난 너무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식을 앞세우는 아픔의 크기를 감히 상상할 수도 없어 그 얘기를 듣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날 이후, 항상 유쾌하고 밝고 씩씩한 미소 뒤에 꼭꼭  숨겨둔 아픔이 강사님의 눈빛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것 같아 뵐 때마다 가슴 한쪽이 아다.

 내가 예쁜 머리핀을 하고 가면 슬쩍 다가와 예쁜 것을 꽂았다고 말을 건네시고 몸의 밸런스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며 비뚤어진 어깨를 더 바로잡아 주신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포즈가 있으면 다른 회원분들이 다 듣도록 칭찬을 해 주시도 한다. 항상 강습이 끝나면 무슨 말이라도 꼭 살갑게 한 마디를 건네시는데 강사님의 아픔을 안 이후엔 무슨 말을 하셔도 마음이 짠하다. 그 딸이 살아있었다면 나 정도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살갑게 정을 주시는 강사님의 마음이 왠지 남다르게 느껴진다.


 백신을 맞고 3일을 꼬박 앓는 바람에 두 번이나 요가를 빼먹고 다시 나간 날. 다른 회원분들이 왜 빠졌냐며 선생님이 내 얘기를 엄청하셨다고 알려다. 특히 내가 잘하는 동작들이 나올 때마다 나를 언급하시며 칭찬을 하셨다는 얘기에 사한 마음, 죄송한 마음이 엉켜 들어온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 평소보다 더 뻣뻣했던 내게 "오늘 잘했어요!" 라며 또 칭찬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너무 넘겨짚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강사님에게 있어서 나 같이 젊은 회원을 가르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니 신경이 쓰이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복잡 미묘한 심경은 무엇일까. 말주변이 없어 다정한 말을 건네진 못하지만 강습 시간에 전력을 다해 열심히 하고 강사님 말을 경청하며 집중하려 애다. 이 것이 내 나름대로 위로를 전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렇게 이 요가 클래스는 내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버린 특별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내게 말을 걸까 봐 앞만 보며 앉아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운동 시작 전 나이 지긋하신 회원분들과 시시콜콜 사는 얘기로 수다를 떠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내 시어머니 뻘 되시는 분들이 각자 며느리 자랑을 하시는 걸 듣는 것도 묘한 즐거움이다. 이렇다 보니 휴직이 끝나 이분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다. 어디에서 이런 분들과 또 운동할 수 있을까. 벌써 6월도 중순을 넘겼으니 길어봤자 반년. 이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한 분도 제대로 이름을 외워서 불러 드리지도 못했는데 큰일이다.


 휴직이 끝난 후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이 요가 클래스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 같다. 비뚤어진 몸을 바로잡아준 것은 물론이요 항상 시니컬하게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 마음까지 반듯하게 고쳐준, 세상에 다시없을 따스함 넘치는 이곳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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