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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01. 2021

고요함이 주는 힐링

와~ 여름휴가다!

 새벽 1시 30분.

휴... 겨우 이 시간이 되어서야 글을 적을 여유가 생겼다. 한 달 만에 왔으니 당연히 잔디밭은 또 꽃밭이 되었고 집 앞은 무성한 수풀이 우거졌다. 뒤늦게 휴가를 내고 내려올 꼼군을 기다리자니 이 꽃밭이 도저히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난생처음 잔디깎이에 도전했다.


 호기롭게 기계를 꺼내는데 까진 성공 했는데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 이리저리 눌러봐도 안되어 하는 수 없이 꼼군에게 SOS를 쳤다. 전원도 켜지 못하는 내가 잔디를 깎는다고 하니 꼼군은 '그냥 놔두라고 그러다 다친다'며 의욕으로만 꽉 들어찬 나를 말린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면 두부라도 베어야지!

'두두두두두' 드디어 잔디깎이의 굉음이 시작되고 나는 곧바로 무성히 피어있는 네 잎 클로버 꽃밭으로 돌진한다. 한 30분쯤 지난 걸까. 드디어 마당이 마당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땀은 송골송골 겉옷까지 적시기 시작하고 땀냄새를 맡은 시커먼 시골 모기가 달려든다. 귀를 물어뜯겨 한쪽 귀만 왕만 하게 부어올랐다.


 직접 해 보니 왜 꼼군이 잔디만 깎으라면 질색팔색 했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마당다워진 모습을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서울에선 땀나는 게 싫어 잘 움직이지도 않고 운동도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해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주에선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맡으며 하는 자발적인 노동에서 비롯된 땀이 이상하게 싫지가 않다. 그보다는 이 노동을 끝내고 나서 시원하게 샤워한 후 느낄 뿌듯함과 상쾌함이 기대가 된다.

아무리 깎아도 죽지 않는 네잎클로버의 흔적들

 한참을 잔디와 씨름을 하고 났더니 벌써 저녁 시간이다. 제주에 함께 내려온 친구는 벌써 우리 집의 고요함에 반한 눈치다. 강남 한복판에 사는 친구는 우리의 말소리 외에는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는 우리 집의 정적과 고요가 너무 좋단다. 오롯이 우리에게만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소음에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이곳이 꼭 어디 유럽의 한적한 시골 동네 같다며 찬사를 연발한다.


 나도 새소리만이 정적을 깨는 이곳의 여유로움을 사랑한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은 훌쩍 흘러버린다. 내가 뻐꾸기 소리를 들었던 게 언제던가! 뻐꾸기가 정말 뻐꾹뻐꾹 운다는 걸 이 나이에 알게 되었다. 거기에 좋아하는 친구와 마주 앉아 와인을 홀짝대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내일은 어딜 가서 무엇을 하고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니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었음이 실감 난다. 아이들도 육지의 일상에서는 허락되지 않았을 늦은 시간의 만화영화 시청에 잔뜩 신이 났다.

우리집은 온통 흰벽이라 스크린이 따로 필요없다!

 한동안은 제주에 당장이라도 내려오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그래서 제주라고만 하면 연봉이든 직급이든 무시하고 무조건 이력서를 넣은 적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제주에서 9 to 6의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면 제주에서의 삶이 지금처럼 매일 휴가 같을까? 그렇진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후부터는 언젠가 디지털노마드의 삶이든 사업을 해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든 아니면 모든 이의 꿈인 건물주가 되든 제주에서의 시간을 지금처럼 힐링으로 느낄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내려오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고요와 정적이 그리워지면 언제든 찾아와 이렇게 마음속에 제주의 향기를 가득 채워놓고 가면 되니 급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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