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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n 29. 2021

내 사랑을 먹고 성숙해지는 곳

안녕 우리집!

 7시 30분. 알람 소리에 번뜩 잠에서 깼다. 오늘은 짐을 싸야 한다. 내일부터 좀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는 장마가 예고되어 있지만 작년에 태풍을 뚫고 다녀왔더니 비쯤은 큰 걸림돌이 아닌 듯 느껴진다.


 물론 내게는 여름휴가를 빌어 제주집을 보수하러 가는 시간이다. 이번엔 몇 달을 벼르던 야외 창고를 설치해야 한다. 집에 창고라고는 2층 계단 밑의 낮은 창고와 외부 보일러실의 공간밖에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가는 각종 기구와 살림살이에 창고가 거의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허나 옆집에서 설치했던 코스트코 조립식 창고가 태풍에 박살이 나 조각조각 흩어져버린 것을 본 후 고민이 길어졌다.

잡동사니로 꽉 들어찬 보일러실

 제주가 바람이 많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그 가공할 파워를 목격하고 나니 떤 창고도 선뜻 고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몇 백만 원짜리 고급 창고를 구매할 여건도 안 되니 가성비에 집중하여 열심히 찾아 헤맨 끝에 드디어 하나를 골랐다. 제주에도 판매점이 있어서 배송을 무료로 해준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는 판단이다.


 전원주택에 농막과 같은 창고는 정말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우리 집처럼 아직 텃밭농사를 시작도 안 한 집도 잔디깎이, 각종 페인트와 방수제, 잔디에 물을 줄 호스와 사다리, 각종 천막과 야외용 테이블 및 의자와 동절기 필수품 펠릿 포대까지... 창고로 직행해야 할 물건들이 한 트럭이다.


 이렇게 집에 무언가 하나씩 치하면서 집이 점점 더 집다워지는 걸 보는 건 설레는 일이다. 처음 휑하니 뚫려 있던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대문을 만들 때도 그랬고 시원치 않게 쌓여있던 돌담을 허물고 전문가의 손길로 멋진 돌담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동네 개들의 자유로운 방문을 막아줄 대문

 나 같은 짠순이가 제주집에 들어가는 돈은 거리낌 없이 펑펑 쓰는 걸 보면 꼼군은 항상 이해 못 하겠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파트에서는 장기수선충당금이란 이름으로 한 달에 얼마씩 돈을 내서 크게 보수를 할 일이 있을 때 쓰곤 한다. 그러나 단독주택은 그 충당금을 낼 가구가 한 가구이다 보니 무언가를 하려고만 들면 항상 목돈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한 번에 모든 걸 하지 못하고 시차를 두어 하나씩 하나씩 적금 붓듯이 완성해 나가는 재미가 또 있다.


 우리 집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오시는 가족들도 이 집을 향한 애틋한 내 마음을 느끼나 보다. 집을 떠나시며 항상 해주시는 말씀들엔 공통점이 있다.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쓴 것이 느껴져요' 라며 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 주신다. 아마도 항상 새집처럼 보이도록 깨끗하게 쓸고 닦기 때문이겠지만 생활할 때 편리하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여러 곳에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여름휴가 기간 동안 새롭게 변신할 우리 집이 또 기대된다. 이렇게 조금씩 나의 사랑과 그 사랑의 크기만큼 점점 커지는 예산을 먹고 하루하루 성숙해질 우리 집을 기대하며 또 한 번 짐을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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