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me some space

내 문제와 거리두기

by 지오바니

제주에 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368개나 되는 제주의 오름을 매일 오르는 것. 하루에 하나씩 올라도 1년이 넘게 걸리는 숫자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니 일단 집 앞에 있는 오름부터 올라봐야지 라고 다짐을 하고 내려왔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닌가 보다.

관광객들이 올라 사진을 찍으며 짓밟아 버린 억새와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들로 제주의 오름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 파괴를 막아보고자 오름 휴식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올해 휴식을 하고 있는 오름은 고작 6개. 그중에서관광객들이 바이크를 타고 올라 탐방로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한 오름의 사진을 보니 꼭 내 살이 찢긴 듯 마음이 아프다. 왜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은 항상 이렇게 망가지고 파괴되는 걸까.


결국 그 오름 사진을 보며 굳건했던 나의 결심은 고이 접어 넣어두기로 했다. 내가 쉬려고 이 곳에 왔듯이 자연도 휴식이 필요할 테니 나 하나라도 그 쉼에 방해가 되지 말자 생각했다.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Give one's space'

관계에 치여 힘들어하는 상대방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잠깐 생각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시간을 주며 지켜봐 주는 일이 아닐까. 저 표현은 그걸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가장 못 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일이든 사람이든 당장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잠도 못 자고 그렇게 밤낮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나쁜 선택을 하고야 만다. 수없이 반복된 선택의 오류와 그에 따른 결과(Consequences)들을 몸으로 겪어내며 이제는 좀 바뀔 법도 한데 아직까지도 눈 앞에 닥친 문제에 매몰되어 끙끙대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누군가는 이럴 때 날 파묻어버린 문제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제3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부감(high angle)으로 나 자신을 피사체로 여기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쩌면 내가 놓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사실은 그리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효과가 있던 방법은 조금 더 극단적이다. 어느 날 티브이에 나온 유명한 부검의가 말했다.

수많은 죽음을 대하면서 인생에 대해 겸허해짐을 느낌과 동시에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죽음을 눈 앞에 놓고 생각하면 가장 정확하고 후회 없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다른 어떤 문제도 하찮게 느껴지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내게 닥친 문제를 대할 수 있었다.

이 방법도 어찌 보면 문제를 조금은 더 큰 테두리 즉 내 인생의 전반으로 끌고 와서 더 긴 시간의 프레임 속에 놓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부감을 활용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위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시간과 공간을 밀어 넣고 자연스럽게 그 틈이 줄어들길 기다리는 것이 나와 내 문제 사이에 틈을 허락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내 문제들은 어딜 가나 내 꽁무니를 바짝 쫓아다니며 멀리 떨어져 있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연습이 필요 터. 그 틈이 존재함으로써 내가 조금 더 편히 숨 쉴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 테니 제 그 연습을 보자.


Give me some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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