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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14. 2021

제주에서 집짓기(1)

내 집을 지어보자!

 제주에 집을 짓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2014년 즈음이었다. 제주에 본사가 있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면서도 언제 발령이 날 줄 몰라 연말이 다가올 때마다 불안했다. 이럴 바엔 아예 제주 근무를 자처해서 내려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집이 있어야 했다. 2014년은 제주살이 붐이 일어 이미 집값이 많이 뻥튀기된 뒤였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언젠가 내 집을 꼭 짓겠다는 소망을 조금 앞당겨서 실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조감도

 하지만 갑부가 아닌 이상 집을 지을만한 목돈이 통장에 있을 리가 없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공시지가 몇 만 원짜리 땅을 담보로 공사대금을 충당할 만큼의 금액을 빌릴 방법은 요원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달을 고민하며 검색을 하다타운하우스를 짓는 한 중소건설업체의 인터넷 카페를 방문하게 되었다. 건설업자들은 왠지 전부 사기꾼일 것 같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건축주로서 하얀 백지상태였던 나는 심한 경계심을 가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때 카페지기이자 건설업체의 대표였던 사람의 진솔해 보이는 글들에 호감이 갔고 점차 마음을 열게 되었다. 다가 주 지리를 좀 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내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평화로와 제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제2산록도로와 딱 붙어 있는 땅의 위치는 완벽해 보였다. 그래서 심지어 직접 가보지도 않고 호기롭게 도면으로만 보고 땅을 구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순진무구하다 못해 사기당하기 딱 좋은 타입이었던 것 같다. 원래 어설프게 조금 아는 게 가장 무서운 법이다. 게다가 나중에 내가 그 땅을 샀다는 걸 알게 된 제주 지인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며칠 고립이 될 수도 있는 곳인데 괜찮겠냐며 걱정을 다. 몰랐던 얘기에 아차 싶었지만 이미 제주의 바닷가 근처에 살며 서귀포가 왜 썩은포라 불리는지 바로 이해될 만큼 무지막지한 습도와 곰팡이에 질려본 적이 있기에 해발 500미터의 쾌적한 기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다음 문제는 공사비용이었다. 대출을 알아봤지만 목돈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처럼 짓는 기간이 몇 년이 걸리고 중도금 대출 등을 건설사가 함께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 몇 달 안에 전체 공사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현금이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고심하던 우리는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을 빼고 제주에 내려갈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를 봐주시던 부모님이 아침마다 집으로 오시는 것이 힘든 차에 잘됐다 싶었다. (물론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도 부족한 자금은 들어놨던 적금을 깨고 보험회사에서 대출을 받으면 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집이 지어지면 대출이 조금이라도 나올 테니 그걸로 잔금을 치르자... 뭐 이런 생각이었다.

2층 도면

 돈 걱정을 내려놓고 나니 생애 처음 내 집을 짓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가슴 벅찬 일이었다. 우리 세 식구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용 가능한 예산 내에서 최적의 설계를 하기 위해 건축의 기역자도 모르는 나는 엄청난 양의 도면과 인테리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시공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심지어 PC에 프로그램을 깔아 가상으로 도면 위에 가구까지 얹혀보기도 하고 온갖 바닥재, 단열재, 창호, 외장재의 특성을 달달 외우고 제주의 습하고 바람 많은 기후에 맞는 것이 무얼까 고민을 했다.


 이는 건설회사에 의해 경량 목조로 결정된 골조와 스타코플렉스로 정해진 외장재까지... 이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건축주로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바보처럼 어리바리하고 싶지 않았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할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공부다 한들 건축주 없는 현장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내려가긴 했지만 내려갈 때마다 건설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컴플레인을 하고 수정 요청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하루는, 욕실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상한 타일이 붙어 있었고 또 어떤 날은 계약서에 적힌 것과 다른 구형 보일러가 달려 있었다. 또 보일러 온도 조절기를 방마다 달아놓지 않고 한 곳에서만 전체를 조절하도록 공을 하고 있는 걸 보곤 기을 한 적도 있다. 결국 현관문 위 처마는 빼먹고 시공하는 바람에 설계비 잔금을 안 주는 걸로 퉁 치기로 했다.  뿐만이 아니다. 욕실 수납함을 거꾸로 달아놓질 않나, 습한 제주에 나무로 만든 현관문을 달아놔서 준공도 하기 전에 온통 곰팡이가 슬어버리는 등 어떤 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내려갈 때마다 속이 탔다. 그제야 건설회사의 시공 이력과 경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카페에서 늘어놓은 멋들어진 감성팔이에 넘어간 내가  한탄스러웠지만 이미 되돌리긴 늦은 뒤였다. 제주에서 집을 지으려면 제주 시공 경험이 많은 업체를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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