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Jul 12. 2021

제주가 왜 특별해요?

그곳에는 돌과 바람만 있는 건 아니다.

 벌써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제주에서 조용한 여름휴가를 보내고 서울 갈 채비를 하데 갑자기 전국적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아이 학교에서는 방학 전까지 전면 원격수업을 알려왔고 뉴스에서는 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면 연신 불안한 뉴스를 내보낸다.


 아이를 데리고 공항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마음 같아선 사람 구경하기 힘든 이 동네에서 조용히 더 지내면 좋겠지만 이젠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둔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잠깐 한숨 돌리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는 병사처럼 무기를 정비하듯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곳은 머물다 떠나는 곳이기에 항상 특별하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었다. 십여 년 전 제주에 처음 혼자살이를 시작했을 땐 결코 친절하지 않은 섬 특유의 기후와 투박한 사람들의 말투에 적응하느라 몇 달을 고생했었다. 회사에서 제주도청 공무원들과 통화를 할 때면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듣는 건 다반사고 내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이미 상대방은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엔 '내가 서울말을 써서 무시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차차 알게 되었다. 원래 제주분들은 서울 사람들처럼 그렇게 다정다감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워낙 바람이 센 곳이라 말의 어미를 짧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잘 들리지 않아서 말이 변되어 왔다는 것까지... 그렇게 끝을 잘라 먹듯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밥 먹언? 왔수다" 사투리를 가끔씩 쓸 때가 있는데 제주도에 친구가 있는 아이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렇게 혼자 사는 제주살이는 처음엔 생경한 문화와 척박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투쟁과도 같았다. 지만 시간이 가며 관광지로만 바라보던 곳을 생활터전으로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점점 제주도민들의 투박한 말투 뒤에 숨은 따뜻한 마음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섬사람들이 원래 그런 건가. 영국이라는 섬에서 느꼈던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그리고 그 경계심이 사라진 후 넉넉하게 마음을 내어주는 섬사람들의 인심을 이곳 제주에서도 똑같이 느꼈다.



 

 육지에서 그것도 머나먼 영국에서 갓 제주에 내려온 도시 아이였던 내가 서귀포의 작은 마을 화순에 집을 구하자 회사분들은 다들 갸우뚱했다. 보통 육지 아이들은 제주시의 새로 지은 오피스텔에 집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저 멀리 영국서 왔다는 아이가 밤이 되면 가로등 하나 없는 항구마을에 정착을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저 조용하고 시골냄새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말이다. 게다가 알고 보니 내가 구한 집 뒤에 영국에서 잠깐 스친 인연으로 만난 제주 토박이 언니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를 이곳에 살아야만 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무슨 일만 생기면 언니에게 SOS를 쳐댔고 그 집 가서 얻어먹은 밥이 몇 끼인 지 셀 수도 없다. 어려운 일만 생기면 어떻게든 수소문을 해서 도움을 주는 언니 덕에 힘들고 외로울 뻔했던 제주 생활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1년도 채 못 되는 제주생활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직원들끼리 단합해서 제주의 유일한 돔 나이트에 가보기도 하고 (밤이 깊어지면 돔 뚜껑이 열린다!) 오름동호회에 가입해서 오름을 오른 뒤 먹는 교래리 닭 샤부샤부의 맛에 눈을 뜨기도 했다. 올레길을 걷다 발견한 동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보말수제비 맛에 환호성을 질렀고 여름이면 제주에서 집집마다 먹는 하귤 에이드 맛에 빠져보기도 했다. 네가 워낙 좁아 어딜 가든 아는 사람을 마주치기 일쑤였고 농담처럼 한 두 집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곳이었기에 어디서든 말조심, 행동 조심을 해야 했다. 여름에만 해변가에서 영업하는 계절 식당에 가서 곰장어를 먹으며 여름 더위를 식혀 보기도 했고 동네 언니들 집에 가서 잘 때면 당최 창문대문까지 활짝 열어놓은 채 잠그지 않고 자는 언니들이 불안해 나 혼자 열심히 문을 닫고 다니던 기억이 다. 우리 집에 아무런 가구가 없는 걸 보곤 집에 남는 티브이가 있다며 빌려주신 분도 계시고 농사를 짓는 어떤 분은 쓰고 남은 면세유가 있다며 싼값에 차에 기름을 넣게도 해주셨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갚아야 할 빚이 많다. 이 마음의 빚이 제주를 내게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누군가 매일 '제주, 제주' 하는 내게 물었다. "제주의 뭐가 그렇게 좋고 특별해요?"


사람이요!


  제주엔 오랜 시간 외딴섬에서 혹독한 기후와 정치적 수난을 겪으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가꿔온 사람들이 있다. 비록 겉으로는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따스하고 그 누구보다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보여주는 그 사람들이 있어 내게 제주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후에도 계속 특별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독주택엔 우리만 살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