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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15. 2021

제주에 집짓기(2)

또 하라면 사양입니다만...

그렇게 3개월이면 지어질 거라던 집이 6개월이 되어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50채가 넘는 대형 타운하우스 단지를 만들려던 원대한 꿈을 꾸던 그 건설회사는 계획했던 땅의 절반밖에 분양하지 못했고 그나마 토목공사를 하던 땅 소유 기업의 오너가 산림보호법을 어기고 감옥에 가는 바람에 모든 공사가 올스톱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제주지역 신문은 엄청난 부동산 사기극이라도 벌어진 양 떠들어댔고 난 쓴웃음을 삼키며 그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공회사는 달랑 양해를 구하는 이메일을 하나 보내왔고 그 당시 내장공사 마무리 중이던 우리 집 덩달아 사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멈춰 있던 시간 동안 우리 집을 맡고 있던 현장소장님은 일자리를 잃었고 1년 후 공사가 재개된 후에도 소장이 없는 현장은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시공사는 뜨내기 인부들을 고용해서 부분 부분 기우듯이 마무리 공사를 했고 그때 제대로 시공이 안 되었던 부분당연히 후에 하자로 나타났다. 하자보수 약정서를 내밀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다시 돈을 들여 미진한 부분들을 보수하느라 몇 달을 보내야 했다. 그때 했던 마음고생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곡절 끝에 삽을 뜬 지 장장 2년이 넘어 2017년 드디어 준공을 했다. 50가구각종 편의시설이 있는 타운하우스에 입주할 줄 알았던 우리는 몇 천평에 달하는 커다란 면적에 딸랑 4가구만 지어진 곳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전 잔금을 치르려고 은행 대출을 알아봤더니 단독주택은 아파트처럼 몇십 프로씩 대출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희한한 건 방 개수가 하나늘어날수록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는 줄어들었다. 특히 화재에 취약한 목조주택은 대출 가능 한도가 훨씬 낮았다.

 러나 안 좋은 일이 항상 나쁜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공사기간이 늘어졌던 만큼 우린 돈을 더 저축할 시간이 생겼고 별도의 추가 대출 없이도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매며 저축한 돈을 털어 잔금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공사기간 동안 계획에 없던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내가 서울에 있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당장 제주에 내려가 살 집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살 집을 지으려던 우리는 이렇게 의도치 않게 제주에 별장인 듯 별장 아닌 별장 같은 집을 갖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알아보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후회되는 부분이 참 많다. 장 후회되는 지점은 건설회사를 너무 감성적으로 선택한 것 그리고 예산이 모자라서 하고 싶은 만큼 공간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나무집에 2층 베란다를 만든 것은 정말 최대의 오점이다! 나무집의 2층 베란다는 누수의 최대 적일 뿐이니 혹시라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뜯어말리고 싶다. 남쪽으로 데크를 내면 그늘이 생기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말에 동쪽으로 길게 낸 데크는 주차장과 너무 붙어 있어 마음에 안 들고, 보안 때문에 외부 보일러실과 다용도실을 연결하지 않아 주차장에서 부엌까지 길어진 동선도 아쉽다.

  런 생각으로 가 "다음번엔 정말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면 꼼군은 집은 짓는 게 아니라 잘 지어진 걸 사면되는 거라며 다시는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꼼군도 나와 같이 맘고생을 꽤 했으니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준공한 지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이곳은 처음에 기획했던 대형 타운하우스로 변모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마을에 붙어 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무 작은 외톨이 마을이 될 뻔했다. 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한적함이 오히려 우리 집의 장점이 되었다. 옆 집이 최소 몇십 미터는 떨어져 있으니 밤새 세탁기를 돌려도, 음악을 틀고 춤을 춰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요즘엔 제주 내에서도 찾기 힘든 이 동네한적한 매력에 흠뻑 빠졌던 한 친구 부부는 그 길로 집을 짓겠다며 열심히 땅을 알아보고 다니기도 다. 건설일을 하는 친구 남편은 처음엔 호기롭게 집을 짓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으나 얼마 못 가 지어진 집을 사는 방향으로 급 선회했다. 제주의 물류비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인건비, 자재비를 알아본 뒤 내린 결정이었다. 제주에선 무엇이든 1.5배다. 집을 지을 때도 평당 100-150만 원은 더 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주에선 무엇이든 육지처럼 빨리빨리 되는 것이 없으니 여유로운 마음과 한없이 길어지는 공사기간을 버틸 수 있는 넉넉한 자금, 그리고 강한 정신력도 필수다. 며칠 전 설치한 야외 창고용 나무 데크도 똑같은 것을 제주만 2배의 가격을 달라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제주 내 나무 가격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곳에 겁도 없이 집을 지은 내가 스스로도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니 망정이지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사양이다.


 몇 년간 마음고생을 하며 집을 짓기로 했던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건설회사랑 싸우기도 하고 얼르기도 하고 사정도 해보고 건축주들끼리 모여 소송을 하겠다며 엄포도 놓았다. 난생처음 내 인생에 들이닥친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왜 사서 이 고생을 하야 하나' 내가 내 발등을 찍었다며 잠 못 이룬 적도 많다. 꼼군과도 의견 차이가 많아 말다툼으로 이어져 얼굴을 붉힌 적 셀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폭풍우 같던 모든 역경이 지나가고 나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집의 존재가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냥갑을 쌓아 올린 듯 똑같이 생긴 집들을 차곡차곡 놓아 만든 아파트와 우리 식구에게 꼭 맞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집은 그 가치를 비할 바가 아니다. 비록 세상의 온갖 쓴맛을 다 경험하게 해 준 어둠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집에서 누리는 행복이 더 값지다는 것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제주에 집을 짓겠다면 글쎄... 난 일단은 말리고 보겠! 아마도 동안은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꼼군의 말에 동조하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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