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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26. 2021

전원주택러의 도리

기후변화는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연일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아침마다 30도를 웃도는 온도에 찌뿌둥한 몸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티브이에선 연일 기후변화로 촉발된 전 세계 곳곳의 이상 기후 현상을 보도한다. 독일, 중국, 인도에선 1년간 내리는 비 보다 더 많은 양이 몇 시간 만에 내려 큰 홍수로 사람들이 죽었고 미국과 캐나다는 이전보다 더 잦아진 대형 산불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백신으로 숨통 좀 트이나 했더니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이젠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디스토피아가 현실에서 구현된 느낌이랄까. 1년이 넘도록 재택근무를 해온 많은 직장인들이 애매해진 업무시간의 구분으로 만성 피로를 호소한다는 기사를 봤다. 작년 초부터 재택근무를 해 온 꼼군은 아직은 출퇴근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이 좋다고 하지만 오랜 집콕으로 인해 꽤 튼튼하게 몸을 지탱하던 근육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점점 늦어진 취침 시간으로 재택근무 이전보다 더 피곤해 보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겁이 나는 건 바로 자연재해다. 지금의 폭염은 다른 나라의 심각한 재난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지만 제주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나는 작년, 한 달 이상 쏟아진 장마 뒤에 제주에 찾아온 태풍 마이삭의 한가운데 있었다.

 

태풍 마이삭을 기다리며 두둥!

 나름 제주의 거친 기후를 많이 겪어봤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나도 큰 자만이었다. 제주에는 태풍으로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뚜껑이 날아간 얘기가 전설로 남아있다. 안 그래도 평소에 바람이 많은 제주에 태풍이 불어닥치면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려면 집콕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태풍이 예보된 날 일찌감치 먹을 것들을 잔뜩 사들고 태풍 맞이에 들어갔다. 집의 모든 창과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마당에 내어 놓은 잡동사니들을 집안으로 들였다. 저녁이 되자 서서히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게 커지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차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잠시  나가야 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태풍의 위력 앞에 극심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바람을 맞으며 바로 2-3미터 앞에 있는 차를 타러 가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차에 탄 순간 그 중형차가 양 옆으로 뒤뚱거리며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차와 함께 날아가는 것은 아닐까 무서워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가까스로 차에서 탈출 했다. 집안으로 들어와 서둘러 문을 닫으니 그제야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강한 바람이 불면 붕에 부딪히는 비바람 소리가 요란한데 마이삭은 그 소리의 크기와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아이들은 귀신의 집에 온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에 초저녁부터 이불속에 몸을 웅크려 뉘었고 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불을 더 환히 밝혔다. 그런데 밤 10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집안이 예고 없이 어둠에 휩싸였다. 온 동네가 정전이 되었는지 비바람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옆집에도 빛의 흔적이 없다. 놀란 아이들은 꺄악! 소리를 질러댔고 당황한 나는 정원에 놓으려 사다 놓은 태양광 전등을 서둘러 켰다. '플래시라도 사다 놓을걸...' 후회가 됐다. 인터넷과 티브이도 당연히 먹통이라 핸드폰으로 제주 카페를 들어가 보니 우리 동네만 정전된 것이 아니었다. 이 근처 동네들이 모두 정전된 것을 보니 전신주가 세찬 비바람에 끊어진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을 달래려 유일한 태양광 전등에 의지해 그림자놀이도 하고 음악도 틀어주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생전 처음 겪어보는 재난 상황에 아이들도 영 쉬이 진정되긴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도 전기는 새벽녘에 복구가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티브이는 복구하기까지 일주일이나 걸렸다! 육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제주에서는 그러려니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난 우리는 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하늘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풍이 지나간 거리는 참혹했다. 기뿌리가 뽑힌 나무와 흙탕물로 뒤덮 도로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집은 현관 빈틈을 통해 흘러들어온 빗물과 2층 테라스의 배관이 막혀 빗물이 넘치는 바람에 방 천장으로 흘러넘친 빗물 외에는 큰 피해는 없었다.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은 아파트도 빗물이 새어 들어왔다는데 나무집이 이 정도 했으면 선방했다 싶어 집을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내 핸드폰에는 앱이 하나 더 깔렸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태풍의 경로를 시간대별로 알려주는 앱이다. 이맘때쯤 되면 난 종종 이 앱을 켜서 혹시나 적도에서 또 다른 태풍이 발생하진 않았는지 주의 깊게 살핀다. 조만간 우리나라를 비껴 지나갈 두 개의 태풍이 제주에는 살짝 비만 뿌리고 갈 것이라고 하니 안심이 된다.


 허나 이렇게 확인을 한 들 가속화된 기후 변화로 점점 더 빈번해질 태풍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저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길 기대하며 창틀의 빈틈을 보수하고 막힌 하수구를 뚫고 날아갈 염려가 있는 것들을 단단히 동여매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살고자 하는 염원으로 전원주택을 지은 사람의 도리를 다 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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