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오바니 Aug 11. 2021

제주와의 인연은 계속 된다.

 다음 달 초 또 제주행을 계획 중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가서 집 상태를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8월 말에서 9월 초는 태풍이 몰려오는 시기. 태풍이 휩쓸고 간 뒤 집이 멀쩡한지 확인하고 보수할 곳들을 손 보려면 대략 사나흘은 잡아야 한다.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주를 오갔더니 이제는 비행기와 렌터카 예약에 도사가 다됐다. 어느 요일 어느 시간대가 싼 지, 어디서 예약을 해야 하는지 검색을 안 해도 척척이다. 그런데 요즘엔 렌터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좀 당황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수기만 제외하면 경차는 하루에 1만 원 이하로 빌릴 수 있어서 택시보다 저렴했었다. 그랬던 가격이 최소 5-6배까지 올랐고 성수기엔 제주에 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비행기보다 비싼 렌트라니... 2008년부터 제주를 오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나름 제주에 익숙한 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2008년, 제주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제주는 거의 천지개벽한 수준이다. 중문에 있던 방 3개짜리 주공아파트 전세 가격이 3000만 원이었고 그 근처에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허다했다. 대신 혼자 살 수 있는 원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펜션에 장기 임대를 하려니 방 하나도 한 달에 50-60 만원은 줘야 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결국 더 싼 곳을 찾아 바닷가에 거의 쓰러져 가는 방 2개짜리 빌라를 6개월에 120만 원에 빌려 제주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옛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바닷가 1층의 그 빌라는 내가 입주하기 전 1년이 넘게 비어있었다고 했다. 살다 보니 왜 그런지 바로 알 것 같았다. 바닷가 1층 집은 습하다 못해 잠을 자다 보면 귀에 물이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참다못해 바로 작은 제습기를 들여 24시간 틀어댔다. 그래도 그 습기를 다 잡기엔 무리였다. 물 만난 고기처럼 벽마다 피어오르는 곰팡이는 어쩔 땐 거의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였다. 벌레는 또 어떤가. 바로 집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에서 내려온 놈들인지 아니면 비어있던 집을 차지하고 있던 원래 안주인들인지 모르지만 타란툴라 같은 거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불을 타고 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부터 올라오는 주먹만 한 바퀴벌레들은 거의 매일 약을 한통씩 다 써도 당최 죽지 않았고 집에 와서 불만 켜면 무언가가 어둠 속으로 사사삭 숨어들어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분명 이 집엔 나만 사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가끔씩 출근길에 신발 안에서 나를 놀라게 하는 작은 바닷게들은 정말 애교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육지에서 가지고 내려간 차는 서울 00이라는 번호판이 붙어 있었고 같은 빌라에 살던 한 아저씨는 내 차만 보면 주차가 잘못됐다며 시비를 걸었다. 피해의식이었을지 모르나 육지 것이라는 낙인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난 그 집에서 몇 개월을 못 버티고 이사를 했다. 그 사이 친해진 한 동료가 운영하는 펜션 2층 집이었다. 이번엔 원룸이라 거실이나 부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널찍한 방과 나만 사용하는 넓은 테라스가 있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애초부터 다른 사람들처럼 제주시내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았다면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까지 와서 육지와 별다를 것 없는 도심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걸(?)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강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생각하면 또 이렇게 무용담이 된다. 그리고 그 집에서의 경험이 중산간에 집을 짓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 나는 더 이상 제주에서 낡은 빌라와 친구의 펜션을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 비록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집은 아니지만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힘을 내 본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제주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분들과 이 소중한 공간을 나누고 있으니 이 또한 뿌듯한 일이다.


 몇 번째 인지 이젠 셀 수도 없는 제주행을 준비하며 이렇게 제주와의 인연을 되짚어 본다. 제주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시들해져도 난 변함없이 오늘처럼 제주를 향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원주택러의 도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