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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ug 02. 2021

후회하면 이미 늦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오늘도 깨어보니 새벽 4시. 기 전 이머를 맞춰 놓은 에어컨이 멈추고 몇 시간이 흐르면 열 돔에 갇힌 몸이 더는 못 견디고 기상 신호를 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보지만 낮 동안 작열하는 태양에 통째로 삶아진 도시는 새벽까지 아있 거운 김을 빼느라 여전히 허덕인다.


 올해의 더위가 유독 더 심하게 느껴지는 건 한낮에 사무실을 벗어난 것이 그만큼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항상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사무실 안에서 지내며 극과 극을 오가는 계절의 혹독함을 마주하는 것에서 살짝 비껴나간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내 몸은 더위와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체온을 조절하는 원초적인 메커니즘을 잊어버린 것 같다. 온도 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지구처럼 말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무실형 인간으로 진화하며 잃어버린 몸의 원초적 기능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론 40도 가까이 오르내리는 온도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래도 한여름이면 으레 그래 왔을 습도와 열기에 잠시만 노출이 되어도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로기 상태가 되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사무실형 인간으로 진화... 아니 퇴화라고 해야 맞을까. 이렇게 바뀌어버린 몸이 가져올 가장 심각한 폐해는 무얼까. 어느 의 상상 속에서처럼 편리함에 우리의 몸을 맡겨버린 미래의 인류 리모컨을 누르는 손 외에는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민둥산이 되어버지도 모른다.

걸어가는 늑대들, 전이수

내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책상 의자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내 몸에 가해진 수많은 압박 구부러진 어깨와 거북목, 만성 요통과 흐릿해진 시야로 돌아왔다.


 그나마 휴직 기간 동안 몸에게 보답하겠다며 열심히 다니던 요가 코로나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나의 유일한 외출 길까지 막히자 숨 막히는 습도와 열기 속에 있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큰 갑갑함에 슴이 조여 온다.


 인간의 몸은 참 정직하다. 내가 몸에 넣어주는 음식과 몸을 사용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어릴 땐 모른다. 하지만 젊음에 기대어 음식을 끼니를 때우는 수단으로만 생각 아무거나 몸에 집어넣었던 사람은 나처럼 언젠가는 꽉 막힌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위를 만난다. 또, 움직이며 일을 하라고 만들어 주신 몸뚱이를 책상 앞에 처박아 놓으면 온갖 병과 함께 앙상해진 팔다리 덩그러니 남을 뿐이다.


 문제는 몸에서 아주 강력한 신호를 줄 때까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챌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 기후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몸 겪게 된 지금에서야 쓰레기통이 된 지구가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우둔한 우리들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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