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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30. 2021

주변인은 이제 그만

과녁의 중앙엔 무엇이 있을까

 보통 청소년이 몸은 성인과 다를 바 없지만 정신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혹은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 방황하며 그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변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난 지금 저 두 그룹 어디에도 속하지 않 다른 의미의 주변인이다. 평생 명확히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곁을 맴돌 뿐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내 인생 속 주변인이다.


 사람들은 목표로 삼은 것을 다 성취하고 살까? 성취할 때까지 몇 번이고 쓰러지고 실패해도 그것을 가지고야 마는 끈기가 부족한 것일까.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금수저가 아니기에 애초에 가질 수 없는 목표라고 뒷걸음질 치며 살아온 걸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저기 있는데 그에 다다르지 못하는 내 짧은 팔다리를 보며 묵묵히 그냥 이 자리에서 쿨한 척 만족한다는 거짓 웃음을 짓고 그 주변을 맴도는 것 같다는 생각. 문제는 비단 오늘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포기가 빨랐다.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적어도 난 시도는 해 보았으니 됐다며 스스로 만족하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남에게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을 알려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실패와 비웃음을 동시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시도하고 혼자 실패했다.


 물론 내 인생에도 몇 안되지만 기억에 남는 성취가 있다. 혼자 준비해서 영국 대학에 편입을 한 것. 합격 소식을 듣던 날 느꼈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뒤이어 영국에서 취업에 성공했던 것. 가족이 그리워 휴가를 내어 한국에서 본 첫 회사 면접에서 합격했던 것.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현 직장으로의 이직.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나름 주어진 기회를 잘 잡으며 운 좋게 살아온 인생처럼 보인다. 허나 저 성취들의 이면에는 닥친 현실을 벗어나야겠다는 발버둥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가까스로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뿐,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걸까.

자꾸만 학교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친구들과 합주 연습을 하 연습실에 처박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 그때 내가 음악에 항상 자신이 없어하자 드럼을 치던 영국친구가 한 마디 했었다. "너 그냥 지금 합주하듯이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연주 알바라도 시작해, 너 정도면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뭐가 걱정이야?"


 그 친구의 말이 격려가 되었지만 동시에 난 겁에 질렸다. '내가 음악을 하며 먹고살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선택은 지금 나의 삶이 답을 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못다 한 음악에 큰 미련이 남아 평생의 한을 풀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애초에 음대를 간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다.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내가 한 선택들의 대부분은 항상 차선책이었다. 음대도 그중 하나다. 목표로 했던 곳을 못 갔고 그나마 내가 흥미를 가진 전공 중 가능한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시계를 돌려보니 차선책이 낳은 차선책의 차선책들이 내 인생의 정 중앙에 있어야 할 그 무언가를 저 멀리 궤도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러다 결국 이젠 내 인생의 과녁 정 중앙에 무엇이 있었는지 혹은 있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젠 그 과녁 주위를 맴돌며 가끔은 3점 어떤 날은 5점. 정말 운 좋은 날은 8점짜리 선택을 하며 10점을 쏘아 맞힐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주변의 화살이 아무리 많이 모인 들 10점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어느 날 흐릿하기만 했던 과녁이 뚜렷해지, 이제 한 번쯤은 나도 10점을 맞히겠다고, 8점 9점에 만족하지 않고 난 꼭 저길 맞혀보겠다고 큰 소리로 당당하게 외치고 싶다. 누가 비웃든 손가락질을 하든. 말도 안 된다고 힐난을 하든 개의치 않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난 이 정도면 됐다고. 지금도 괜찮다고, 이만하면 만족한다는 그 지긋지긋한 소리는 이제 그만 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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