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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Nov 15. 2021

잘못 꿰어진 단추

 또다시 호흡이 가빠온다. 마스크를 방패 삼아 커다랗게 심호흡을 해 본다. 그래도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이 긴장 섞인 스트레스가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눈을 잠시 감아 보아도 도저히 나아지질 않는다. 결국 남은 방법은 터뜨려버리는 것뿐인데 그럴 용기도 없으니 그저 목에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자꾸만 꾹꾹 눌러 삼켜버린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착각이었다.


 한 달 하고도 열흘이 흘렀다. 이쯤이면 익숙해질 법도 하고 제법 맡은 바 일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해낼 법도 한데 난 여전히 제자리다. 처음엔 함께 일할 부서원 하나 없는 내 자리, 조직도 그림의 끄트머리에 혼자 매달려 있는 내 이름이 그저 의아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원래 내가 있을 곳은 B팀이었고 윗분들의 세력 다툼으로 급하게 없던 자리를 만들어 내가 지금의 A팀 소속으로 뽑힌 것이며 결과적으로 B팀은 내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따라서 난 입사하자마자 여러 사람에게 눈엣가시로 미움을 받을 처지이며 인수인계를 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까지... 돌아보면 이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그만두었어야 했다.


 한 달여를 아무 자료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그 와중에 꼰대력 최상급의 직속 상사를 모시느라 밤이고 낮이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내게 던져지는 앞뒤 사정 모를 일들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해내고 나니, 그제야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실감이 난다. '내가 비정상인 상황에서 혼자 정상인 행세를 하고 있구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참 이상한 기분이다. 얼굴 한번 못 본 B팀의 전임자는 업무로 엮이고 싶지 않으니 자신에게 인계받을 생각 말라며 메시지를 보내고 B팀의 팀장을 찾아가 처음 뵙겠다며 인사를 하니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린다. 그 와중에 '그 사람들을 무시하고 혼자 일하면 되는 거지 왜 아직도 업무를 파악 못했냐'며 입사 3일 차부터 줄곧 퍼부어 대는 상사 덕에 내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를 파 내려가는 중이다. 이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당장 때려치우라고 아우성이고 매일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가족들은 더 이상은 위로의 말조차 찾지 못한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선택의 순간에 더 큰 회사, 더 많은 연봉을 쫓은 내가 잘못한 것일까? 혹시 내가 근성이 부족한가?이런 상황이 어디서나 있을 수 있 일일까?그렇다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걸까?


아니다, 이건 분명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사람을 데려다 놓은 그들의 잘못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원래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그렇지 않을 때보다 높게 매기는 심리가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중고시장에서 살 때 예상하는 가격과 자신의 물건을 내놓을 때 가격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은 이유에서 일까. 남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왜  맘과 몸을 혹사하냐며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니 미련을 버리라 한다. 하지만 이곳이 내 자리가 된 이상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 않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풍파를 겪으며 커리어를 이어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라니... 스스로 납득이 되지 다. 너무 짧은 기간이라 이력서에 넣지도 못 할 오점이 생긴다는 사실은 그 생각만으로도 끔찍. 래서 격다짐으로 매일매일 적응해 낼 거라며, 할 수 있다고, 해 내라며 나 자신을 학대다. 그러다 결국 정신줄을 놓아버린 내 마음이 그 전날 회사에 두고 온지도 모르고 노트북이 가방 안에 없다며 출근 전에 난리 법석을 떨게 만다. 가방에 노트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회사를 오가는 내가 괜찮지 않다고 이렇게 비명을 질러는데 난 여전히 대책 없이 망설이는 중이다.

 못 꿰어진 단추는 아무리 꿰어내려가도 결국 어긋나게 마련인 것을...난 이렇게 자꾸만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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