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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Nov 22. 2021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삶

 우리 반바지는 - 꼼군과 나는 각자 회사의 본부장을 이렇게 부른다 - 이제껏 만나본 상사 중 최고의 꼰대다. 십여 년 동안 나름 다양한 상사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꼰대인 사람은 정말 처음 봤다.


 일단 반바지의 별명부터 무시무시하다. '몽키스패너'. 무언가를 꽈악 조일 때 사용하는 이 연장처럼 직원들을 풀리지 않게 언제나 바짝 조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입사 후 3일 차부터 나도 그 몽키스패너에 머리가 끼여 조임을 당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반바지 입에서 칭찬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너무 완벽한 보고서를 가져가면 이상한 구실로 트집을 잡아 오히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갈 수 있으니 적당히 틈이 보이는 정도로 보고하라는 조언을 들을 정도다. 게다가 밤낮없이 카카오톡, 문자, 전화, 심지어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한다. 텔레그램에서 날 초대하려다 내 계정이 없자 엄청 짜증을 내기도 했다. '텔레그램이 누구나 사용하는 메신저던가?' 텔레그램을 사용 안 하는 것도 그가 보기엔 잘못이다. 주말에 보내는 메시지를 무시했더니 급기야 바로 전화를 걸어 하는 수 없이 받아야 했고 새벽 1시에 보낸 자신의 메일에 회신을 안 했다며 자기를 무시하냐고 화를 낸다. 내 스케줄은 하찮고 자기 스케줄은 중요하니 무언가 갑작스레 생기는 일도 너무 많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을 해내다 보면 원래 주어진 일은 결국 야근행 티켓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팀이 달라졌다는 핑계로 내게 인수인계도 해주지 않는 전임자를 들먹이며 그가 얼마나 일을 잘 해냈는지 나와 계속해서 비교를 한다. 정말 첩첩산중이다.


 이런 리더십 밑에서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정상이 아닌 포지션에 뽑혀 한 달 반이 지나도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못 받아 여기저기서 자료를 구걸하며 일하고 있는데 이런 상사의 직속 담당으로 일을 하다 보니 유일한 마음의 위안은 채용공고를 들여다보는 순간뿐이다. 그리고 왜 이 팀에서 한 달에 3명씩 퇴사를 하는지 이제 감이 온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라도 뭔가 존경할 만한 혹은 인정할 만한 역량을 갖추었다면 적당히 배운다는 미명 아래 인내할 수도 있을 텐데 한 달 반 동안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저히 아무런 장점도 발견할 수가 없다. 외려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은 장본인으로서 내 상황을 이해한다고, 조금은 미안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신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할 생각은 없는 그 이중성에 마음만 저만치 더 멀어질 뿐이다.


 이 총체적 난국이 시간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결국 내게 주어진 질문은 이런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겠는가로 귀결된다.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도 견딜 수 있고 맨땅에 헤딩하며 업무를 해 나가는 것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함께 일을 해야 할 사람을 참아낼 수 없다면 이는 막다른 길을 향해 걷는 것과 같지 않을까. 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사람이 문제다. 하지만 이번엔 급이 좀 다르다. 반바지를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엮여 있는 그 대단한 사람들이 버뮤다 삼각지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처럼 나를 에워싼 기분이랄까. 회사의 대표적인 진상들이 하필이면 전부 내 차지가 된 상황이다. 거 참 복도 많지!


 똥 한번 밟았다 생각하기엔 그들의 아우라는 너무 크고 길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언제든 사표를 내던질 마음 먹고 오늘도 꾸역꾸역 시한부 같은 하루기는 것 외에 지금 당장 다른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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