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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Nov 29. 2021

내 인생의 가치

영혼을 잘라낸 그 어부처럼

 2주 동안 날 괴롭히던 임원회의 발표가 드디어 끝났다. 입사한 지 한 달 된 사람을 보드미팅에 세우는 건 또 무슨 꿍꿍이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덕에(?) 의도치 않게 회사의 대표와 핵심 간부들에게 얼굴을 알리게 되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취업 정보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보는 가, 회사에선 해보겠다며 하루 종일 달달 외운 내용을 최선을 다해 발표하고 있는 이 상황이 참 혼란스럽다. 내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는 심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하튼간에 발표는 아주 잘 끝났다는 점이다. 어젯밤 꿈속에서도 발표를 하던 나는 천만 다행히도 별 긴장 없이 그 부담 가득한 시간을 이겨냈다. 웬일로 칭찬에 인색하다 못해 전설 속에서만 '그랬다더라'하고 내려오는 그 긍정의 말을 오늘 반바지의(본부장의 속칭) 입을 통해 들었으니 최소 오늘은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보드미팅 룸에 들어서자 반바지는 불안과 초조, 못 미더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런 반바지에게 보란 듯이 엄청 잘 해내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없어지면 아주 조금은 아쉬울 수 있게 말이다. 어쩌면 이 또한 내 욕심인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내가 필요한 존재이길 바라는 어설픈 완벽주의와 그것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인지도 모르는 헛똑똑이.


 어릴 때부터 죽을 만큼 아파도 학교며 회사를 빼먹을 생각도 못하고 성실함을 무슨 결코 깨어질 수 없는 절대 반지인 양 여기던 헛똑똑이는 좀체 그 성향을 바꾸질 못한다. 게다가 누구와 적을 만들기도 싫고 불편해지기도 싫고 그 와중에 누구나 내 진가를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너무나도 중요한 이 바보는 이 비정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몫을 정말 최선을 다해 해내겠다며 발버둥을 친다. 이렇게 밖에 사는 방법을 몰라 달리 어쩔 수도 없다. 얼굴도 못 본 내게 인수인계해 줄 생각이 없다며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뻔뻔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은 버젓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내 뒤에서 험담을 하면서도 잘만 살아간다. 그로 인해 벌어진 뒷감당은 언제나 그렇듯 나의 몫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자조하며 한시라도 삐끗하지 않으려 조심조심 발을 떼는 내 모습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생활 속에서 나는 점점 예전의 모습을 잃어간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진하고 기존의 것을 개선해 나가며 새롭게 시도한 것을 제대로 구현해 냈을 때의 성취감과 그로 인한 성장이 내가 일을 하는 이유였건만 그런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이 상황에 풀이 죽고 자신감이 결여된,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현재에 매몰된 내가 있을 뿐이다.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긍정의 에너지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마구잡이로 이력서를 넣곤 했다. 허나 막상 그렇게 걸려든 이 자리 몸부림칠수록 더 꽉 몸을 옥죄여 오는 거미줄에 매달린 먹잇감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도, 확실한 방향 없이 그저 가락을 펼쳐 그 사이로 걸려든 일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인생에 드디어 커다란 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다. 어진 상황을 합리화하며 원래 내가 원했던 것인 양 지금의 회사로 옮겨야 할 수십 가지 이유를 찾아내던 몇 달 전 나의 모습이 눈앞을 스친다.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오스카 와일드의 '어부와 영혼'이 떠오른다. 인어와 사랑에 빠져 영혼을 잘라내 버린 어부에 인생의 가장 커다란 가치는 맹목적인 사랑이었다. 국 다시 자신을 찾아온 영혼을 끌어안고 바닷속으로 사라져야 했지만 그는 적어도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가치, 즉 사랑에 전심을 다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인생을 던졌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내게 중요한 가치를 쫓아 잘 살아온 걸까. 사랑하는 가족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지만 그 일이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자아실현 하기에 충분한 성취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길과는 동떨어진 곳에 불시착한 것이 분명하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일을 하며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젠 '근성이 부족하고 참을성이 없는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바꿀 수 없는 구조적인 오류에서 시작된 이 자리를 얼른 박차고 나서야 한다. 더 이상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오늘만 사는 것처럼 지금 내 눈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이 시간을 또 다른 배움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 영혼을 잘라내 버린 그 어부처럼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제 망설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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