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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Dec 15. 2021

내 인생의 작가님께 바치는 읍소

 일주일째 재택근무 중이다. 일주일에 하루만 재택근무를 해도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일주일을 집에서 일을 하니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다. 이미 출근했었어야 할 시간에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의 등굣길을 챙기곤 아침을 차려먹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어제 읽다 잠든 책을 마저 펼친다. 9시 5분 전. 책상 앞으로 출근할 시간이다. 간밤에 날아온 이메일을 처리하고 오늘 해야 할 일과 참석해야 할 회의 시간을 체크하면서 업무를 시작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11시 30분. 역시 재택근무 중인 꼼군과 집 근처 맛집을 찾아 미주알고주알 매일 얘기해도 끝이 없는, 살아가는 얘기를 하 배를 불리고 집에 돌아올 땐 자연스레 둘 만의 산책 한다.


 함께 손 잡고 길을 걸으며 행복에 대한 단상을 나눈다. 행복은 이렇게 작지 소중한 순간순간이 가져다주는 충만한 감정의 집합체가 아니겠노라며 서로 마주 보고 공감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항상 행복한 순간만으로 이루어진 인생은 있을 수 없다. 인생의 길목 구비구비마다 어려운 일 힘든 일 재미난 일 슬픈 일이 생긴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기쁨이 행복의 다른 이름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어느새 새로운 직장에서의 시간도 두 달이 넘어섰다. 한 달이 꼭 1년처럼 느껴지는 지난 두 달이 어찌 됐건 흘렀다는 것이, 내가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이 그저 대견하다. 온몸과 마음을 정신없이 두드려 맞던 첫 한 달에 비하면 지금은 거의 유토피아 수준이다. 팀의 모든 사람의 관심이 내게 쏠려 있던 그때엔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앉아 있는지 다들 나를 힐끔거렸다. 어깨 축 늘어뜨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 얼굴로 앉아있던 날 보며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본인들끼리 내기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세 가득한 기선제압일 뿐이었던 반바지(본부장)의 인신공격에도 그때는 아무런 저항 한번 못 해보고 KO를 당했었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무서우리만큼 고요하다. 일단 나에 대한 검증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다고 판단했을 터. 웬만하면 나를 시험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갑자기 나를 존중하는 듯한 반바지의 돌변에 가까운 태도변화가 아이러니하지만 금은 이 고요를 조용히 즐기는 중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 와중에도 여전히 한 달에 한 명씩 팀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힘들 때마다 항상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힘이 되어 준 소중한 팀원이 작별을 고했다. 얼마나 봤다고 이렇게 슬픈지... 그 간 내 힘든 마음 의지할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얼마나 긴 시간 그 사람을 알았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그 예상치 못한 헤어짐이 내 마음에 큰 구멍을 만든다.


 하지만 만남은 언제나 이런 순간을 부록으로 달고 찾아온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해본 나는 그 휑하게 뚫린 마음을 적당히 다른 것들로 메꿔볼 줄도 안다. 마음 둘 다른 을 찾고 새로운 인연들에 마음을 쓰며 구멍이 더 이상 커지지 못하도록 꽉 동여매 본다. 비록 여전히 그 구멍에선 계속 스산한 바람 새는 소리가 나지만 모르는 척 귀를 닫고 어서 시간이라는 연고가 그 생채기에 덧발라지기를 바라는 중이다.


 이렇게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모인 상처들은 다시 평화로워진 일상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내 결심을 더욱 공고히 만든다. 처음 한 달은 혼이 빠진 듯이 회사와 집을 오갔던 내 몸이 집 나간 정신을 불러들이느라 바빴건만 그렇게 겨우 불러들인 정신과 마음다시 회사 빌딩 밖에서 내가 어서 그들을 만나러 나오길 고대하는 중이다.


 재택근무가 주는 달콤한 편안함도 그로 인한 단편적인 행복의 순간도 이미 밖에 나간 그 녀석을 불러들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매일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보내는 하루는 그래서인지 조금 특별하다. 기억 속에 담을 요량으로 내 손이 닿는 모든 사물에 한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얘기 했는지 그날 그곳 공기의 냄새는 어땠는지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 자꾸만 곱씹고 있자니 하루가 슬로 모션으로 움직인다. 이유가 어쨌든 결과가 좋았든 그렇지 못했든, 내 인생의 한 모퉁이에 기억될 이곳을 꾸만 눈에 담으려는 내가 꼭 비극적인 운명을 알아버린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빨리 끝내야 할 텐데 마지막 회 대본은 언제 받아볼 수 있으려나. 조급 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마지막 대사를 읊어본다. 멋지게 반바지(본부장) 얼굴 내뱉어줄 대사를 고치고  듬어 그날 밤 이불 킥 하지 않을 완벽한 대사 한 줄을 완성해본다.


'내 인생의 작가님! 이곳에서의 마지막 회 대본은 언제쯤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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