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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Dec 22. 2021

열심히라도 안 살면...

  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라는 요청에 꼼군은 망설임 없이 "자기는 참 열심히 살아" 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본 사람이 해 주는 그 말에 나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았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물론 열심히 산다는 것이 잘 살고 있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인생을 허비하고 살고 있진 않음을 가족들도 알아주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는 삶. 그러다 발을 헛디뎌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한눈을 팔다 엄한 곳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래도 뒤 돌아보면 예전보다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나를 발견하며 또 한보 전진할 동력을 얻곤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나의 관심은 자연스레 현재보다 미래에 더 자주 닿아있다. 우리가 몇 살 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지금으로부터 십 년이면 마음 편히 은퇴를 할 수 있게 될지. 그때쯤이면 대학에 갈 아이에게 필요한 뒷바라지를 다 해 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원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그 모습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세상에서 날 필요로 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려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이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이다. 회에서 버림받지 않겠다 용쓰며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적응하려 각종 강좌를 섭렵하고 매주 책을 읽고 블로그를 쓴다. 그 와중에 석사 공부를 하며 일 병행하고 있으니 열심이라는 단어 앞에 부끄럽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는 이런 노력과 안간힘이 내 인생을 조금씩 더 나은 길로 인도했다고 믿는다.


 아보면 고등학교 때는 수능이 내 인생의 절대 심판자 같았다. 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절대적 권력을 지닌 한 번의 기회. 허나 겪어보니 세상에는 그보다 더한 크기의 결단의 순간들이 수도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분명한 건 그 어떤 시험도 내 인생의 성패를 단박에 결정하는 권력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날 환호하게도, 낙담하게도 만들었지만 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감내하며 내가 더 단단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그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장이 한번 뒤집히는 듯 내리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렇다고 롤러코스터가 멈추진 않는다. 이럴 땐 외려 눈을 크게 뜨고 현실을 마주하는 편이 더 낫다. 정확하게 내가 처한 상황을 직접 목도하고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아는 것이 두루뭉술하게 불명확한 불안과 공포가 덮치길 기다리는 것보다 견디기 쉬우니 말이다.

 

 이제 다음 주면 3개월의 수습 기한이 종료된다. 100일을 버티면 1년도 버틸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린 지 오래다. 그 대신 자꾸만 그만둬야 할 명분을 찾느라 온종일 마음이 바쁘다. 게다가 그 명분들을 제대로 찾기 전에 혹시 이 회사에 정이라고 들까 싶어 약간 초조하기까지 하다. 그 마음을 눈치챈 걸까. 좋은 사람들이 자꾸만 옆에서 용기를 주고 힘이 되어주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회사와 나를 분리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내 자아는 살짝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렇게 애쓰실 필요 없어요.' 목구멍까지 달려 나온 이 말을 깜짝 놀라 꿀꺽 삼키고 '정말 감사하다고.. 너무 위안이 된다'며 죄책감 섞인, 하지만 진심인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


 그 3개월이 꼭 1년 같았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모두들 아직 100일도 안 된 나를 팀의 일원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인 눈치다. 워낙에 팀원들이 자주 바뀌는 탓에 3개월이 된 내가 2주 된 신입을 교육시켜야 한다. 이렇게 발이 공중에 붕붕 뜬 것 같은 공허한 마음으로 누굴 교육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여느 때처럼 이곳에 속한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누군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며 그렇게 살아도 변할 것 없다고 한탄할는지 모르지만, 난 열심히라도 안 살면 이 각박한 세상을 어찌 살아나가야 할지 당최 모르겠다. 그래서 매일매일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바지런히 무언가를 한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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